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낮 Sep 23. 2024

보는 게 일

원고 좀 봐줘요.

지난 금요일에 엄청난 분량의 원고가 메일로 도착했다. 아는 출판사 대표님이 좀 봐달라고 보낸 것이다.


'보다'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사전을 보면 동사로 쓰이는 의미만 26가지이고, 보조동사, 보조형용사로도 쓰인다. 그런데  "몇 번 뜻입니다" 하고 알려주며 쓸 리는 없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


'흠... 뭘 도와달라는 거지?'


대표는 내게 이거 출판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저자에게는 인생의 역작이 될 거라고 했다. 아마도, 보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보라는 것 같다. 대충 봐도 저자의 노력이 느껴졌다. 일단 보통 책 몇 권은 될 만큼 양이 방대했고, 이미 목차와 일러두기까지 작성해 둔 상태였다. 정보전달 글인데 글이 다루는 범위가 엄청 넓었다. 그렇지만.... 


'내가 왜?'


난처하다.

이 대표는 예전에, 그날 인쇄 넘긴다는 책 pdf를 내게 보내며 그냥 구경이나 하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처음 보는 책을... @@

보는 게 일인데, 구경하라는 건 뭘까.

쓱 넘겨 보니 몇 가지 자잘한 실수가 눈에 띈다.

앗, 목차에 큰 실수도 보인다. 

보이니 말해줘야지.

인쇄를 앞두고 있다는데 다짜고짜 틀렸다 말할 수 없으니(고칠 수 없다면 찜찜하기만 하다) 진짜 오류인지 자료를 찾아 다시 확인한다.

시간이 간다.

시간을 들여 보고 또 보는 게 직업인 나는....


...


"프리랜서는 귀사의 직원이 아닙니다"라고 적고 싶었지만, 진행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조언하기 어렵다고 답메일을 보냈다. 이 대표는 사실 정이 많고 인간적인 편이다. 그 탓에 일의 경계가 흐릿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곳의 고질적인 병패(?)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주 편집자의 두 가지 장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