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외주 출판인 모임 단톡방에서 전공 얘기가 나왔다. 편집자들이 모두 국어국문과 출신은 아니라는 말들이 오갔고, 오히려 타 전공이 반 이상이라고 했다. 문예창작과, 영어영문과, 심리학과, 신문방송학과, 경영학과, 과학교육과, 국어교육과 등. 누구는 공부는 대학 이후부터 하는 거 아니냐고 했고, 누구는 오히려 이과적 사고 능력이 편집자의 필수 덕목이라고 했다. 나를 비롯한 국어국문 전공자는 대학 때 배운 것이 편집 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사람인 멘토링에서 만난 편집자 지원자는 사회학과 졸업생이었다. 그는 편집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면 되냐고, 전공자가 아니어서 불리한 게 있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전공보다 중요한 게 안목과 기획력, 글빨이라고 답했다. 그것은 어쩌면 경력보다 중요하다고. 흔히 편집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맞춤법에 맞는 글쓰기 능력이야 사전 찾으며 공부하면 쉽게 얻을 수 있고,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대학이 아니었더라면 배우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대학이라는 장치가 없었다면 청춘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친구와 더불어 먹고, 책 읽고, 공부하고, 종일 '나'와 '내 세계'를 생각하며 지낼 수는 없었을 듯하다.
대학 때였는지, 졸업한 이후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한바탕 쏟아지던 비가 보슬비로 바뀌었고 창밖의 세상은 선명하고 맑았다. 버스 유리창도 세차한 듯 깨끗했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의 풍경을 떠올리면 마치 만화 영화처럼 모든 선이 깔끔하고 장면이 아름답다. 온도와 습도와 날숨과 들숨의 향이 내게 딱 맞았던 모양이다. 버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이유 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산꼭대기에 올라 더 높은 산 쪽을 바라보며 그 모습에 압도되는 것처럼 가슴 한쪽이 뻐근했고, 해안선이 한눈에 담기지 않는 큰 바다를 바라봤을 때처럼 속이 후련했다. 몸과 마음도 비 쏟아낸 구름처럼 가벼웠다. 나는 달리는 버스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을 뿐인데. 일상의 한 장면이 순간 그런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신비하기까지 했다.
'이게 바로 시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느낌이 시詩라고 확신했다. 습관처럼 이 풍경을 어떻게 언어에 담을지 고민했다. 적합한 단어를 찾으려 애썼다. 쉽지 않았다.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어떤 실마리라도 잡고 싶었다. 할 말이 있는데 못하는 사람처럼 조금 끙끙대는데, 발 밑에 바닥이 느껴졌다. 비와는 반대 방향으로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던 신비한 몸이 금세 내려와 버린 것이다.
'시는 쓰지 않는 데 있구나!'
쓰지 않아야 잘 느끼며 살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해야겠다.
그날 나는 시분과 장이었던 연진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국어국문학과에 세 개의 학회가 있었다. 어학과, 소설분과, 시분과. 나는 시분과 회원이었다. 국문과 선배들 앞에 내가 쓴 시를 내놓고 그 평가를 듣는 일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몇몇 선배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말투를 빌려 시를 합평하곤 했다. 그 말은 "이게 시가 아닌 이유는~"으로 시작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자 쓴 시를 들고 와서 시인지 아닌지, 시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배들은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가 뒤풀이에 가서는 그런 말 다 신경 쓰지 말고 맘대로 쓰라고 조언해 주곤 했다. "사실 네 시는 좋아"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나는 그 선배들이 무척이나 좋았다. 시어를 지적당해 기분이 상했던 남자 동기는 그런 상황을 비판하는 시를 적어 오기도 했다. 그러자 선배들은 "이 시가 네가 쓴 시 중에 제일 좋다"라고 평해 줬다. 해가 가면서 선배들은 학교를 떠났고, 나는 후배에게 그런 선배가 되지 못했다. 나는 혼자 책 읽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가끔 썼다. 세상은 흐릿했고, 비유와 상징과 짐작을 '통찰'이라고 착각했다. 어설프기 그지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오랜만에 연진언니를 만난 것이었다. 그나마 게으르게 쓰던 글을 이제는 아예 안 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나는 연진언니에게 버스에서 경험한 일을 말했다.
"시집에서 본 시보다 창밖의 풍경이 더 좋더라고요."
언니는 어른이었다. 직장도 다니고, 돈도 모으고, 글도 쓰고 있다고 했다. 어린애처럼 들떠서 어떤 기분에 대해 말하는 내게 연진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 하면 되지"라고 했다. 쓰기 싫을 땐 쓰지 말고, 쓰고 싶을 땐 쓰면 된다고. 어느 땐 삶이 시가 될 수도 있다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나를 예뻐해 줬다.
출판일을 하는 데 전공은 크게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만약 출판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책에서 영영 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문과 남학생과는 연애하기 싫다고 말할 정도로 삶을 은유적으로 보는 태도에 질렸던 때가 있다. 어느 작사가처럼 "눈이 녹았다" 다음에 "봄이 왔다"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눈이 녹았으면 물이다"라고 말하는 이과적 사고로 세상을, 이제는 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때가 있다. 졸업 후 지금까지 나는 '봄'과 '물' 사이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어느 땐 '봄'으로 어느 땐 '물'로 인생의 힘든 시기와 즐거운 시기를 지나왔다. 그리고 어제 오랜만에 전공 얘기가 나오자 연진언니가 다시 생각났다. 언니 말이 맞았구나. 내내 긴 생머리였던 언니가 어느 날 '숏커트'를 하고 나타난 적이 있었다. 괜찮냐고 물었더니, 얼굴이 빨개진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전에 입던 옷이랑 머리가 안 어울려. 나도 몰랐는데, 그동안 긴 생머리에 어울리는 옷을 주로 입었더라고."
자른 머리 스타일이 내 옷이랑 안 어울릴 수 있고, 반대로 내 옷이 내가 원한 머리 스타일과 안 어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연진언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