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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이웃 서평

채수아 작가 신작 "사람을 사랑하는 일"

by 대낮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예순한 살이 된 작가는 살면서 보고 경험한 장면들을 하나씩 풀어놓고 있었다. 슬픈 장면도 있고 답답한 장면도 있고 놀라운 장면도 있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는 그 눈이 너무나 차분해서 놀라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굴곡진 삶 앞에서 담담해지는 과정인가 생각했다.

얼마 전 나이 드는 일, 늙는 일에 대한 글을 적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그 순간에 나는 과연 지난 삶과 늙은 현재와 더 늙을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궁금했다. 채수아 작가는 내가 궁금했던 그 시점에 있었다. 예순 이후. 그는 글을 적었다.


왜 그리 힘든 시집살이를 견디고 살았냐는 질문을 가끔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이다. 어머님의 한 많은 일생에 무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어머님은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으셨다. 어머님은 도망가고 싶으셨지만, 가족을 끝까지 먹여 살리셨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의 삶은 위대한 것이다.

[...]

'그래, 나만 참으면 된다. 나만 견디면 되는 거야.'

[...]

난 내 마음 그릇이 바다인 줄 알았다. 시댁 식구 모두를 품고도 남을 줄 알았다.


(채수아 작가 신작 에세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 중에서)


작가의 시어머니는 홀로 삼 남매를 악바리처럼 키운 분이었다. 그 시어머님을 17년 동안 모시며 작가 역시 삼 남매를 키웠다. 시어머니는 같이 살기에 녹록지 않은 분이었다. 세상 풍파를 정면으로 맞설 만큼 강하고 거칠었다.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책이 담겼던 책봉투까지 따로 가지런히 박스에 보관할 정도로 세심한 성격의 작가 마음속에 시어머니가 준 상처가 얼마나 큰 소용돌이가 되어 태풍처럼 지나갔을까 생각하려니 그 생각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작가는 마음의 병, 육신의 병을 얻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교사직도 더 할 수 없어 사표를 내고 난 뒤에야 의사의 권유에 따라 분가를 했다. 이후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사과했다. 그 사과를 시작으로 작가는 치유의 과정을 겪었다.


남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처절하게 버텨낸 한 여성으로서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

가족을 지키려고... 모든 순간에 그 사랑을 생각하며 참았지만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했다고,

작가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이 너무나 후회되고 원통하다고 넋두리를 적을 만도 한데,

그때 그랬고, 지금 이렇다고 담담하게 적었다.

바람 많던 세월이 그녀를 통과하면서 남긴 유일한 유산은

다른 사람의 삶과 자신의 삶과 생활 속의 모든 풍경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따스한 시선이었다. 인자한 마음이었다.


나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누구를 위해 쓴 것일까? 숨기고 싶었던 내용도 있고, 수치심을 심하게 느꼈던 이야기도 있다.


나는 사랑을 회복했고, 치유되는 과정을 겪었다. 몸이 힘든 사람, 마음이 힘든 사람, 사랑의 상처가 큰 사람... 그들 모두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에필로그 중에서)


손가락 다친 사람은 팔뚝 잘린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상처는 상처만이 안아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사랑의 상처가 큰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많은 상처를 지나 지금은 괜찮다고, "회복했고, 치유"됐다고.

이 작가의 진심 어린 위로가 많은 독자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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