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세속의 번잡스러움을 떠나 고요하게 숫자와 기호와 논리 속을 유유히 산책하는 한 정신. 쓸모가 없는 수학. 그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수학에 대한 단상입니다”
일곱 번째로 인터뷰했던 김동진 작가의 [쓸모없는 수학]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전에 읽을 때는 그냥 멋진 문장이다 싶었는데, 스도쿠의 매력에 빠진 요즘 다시 보니 탁월한 문장 같다. 인터뷰책 쓰다가 답답하거나, 살림이 귀찮거나, 여유 시간이 생기거나, 책이 안 읽히거나, 티브이가 재미없거나, 너무 배가 부르거나, 배 속이 허전하거나, 잠들기 직전에 스도쿠를 했다. 그러니까 요 며칠 시도 때도 없이 한 셈이다. 연말이라고 가족들이 다들 쉬길래 나도 대놓고 좀 놀았다. 한 개 푸는 데 30분 안팎이다. 어린이 스도쿠 책이라 휘리릭 푸는 게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단계가 올라가니 만만치 않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지우개를 들고 고심하는 나를 보는 남편 왈, "아주 게임보다 더해." 아들은 이런 말, "엄마가 중독된 것 세 가지는? 일, 테트리스, 스도쿠." 딸은 이런 말, "방학 때 엄마는 초등 아들과 놀아주겠다고 결심하겠지만 아마도 스도쿠 할 듯."
숫자 맞추기가 이렇게 재밌을 노릇인가. 마감을 미뤄두고 하는 테트리스가 재밌는 것과 같은 원리겠지.... 9시 뉴스도 재밌다는 시험 전야와 같은. 인터뷰집 쓰기가 슬슬 끝나 간다. 그러니 자꾸 뭉그적 뭉그적 스도쿠나 한 판 할까 싶은 듯. 물론 첫 번째 끝나는 거니까 앞으로 여러 번 더 끝나야 하니 정신 차리자고 다짐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