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뜨라 교수님

프라하의 가을

by 박민희

재림이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프라하성 부속건물 정원이 아름다운 프라하 음악원 공연홀에 들어섰다

빼 뜨라 교수님은 나를 맨 앞줄로 안내하셨다


연주자가 잘 보여 좋긴 한데 맨 앞줄이라 부담스러워 뒤를 돌아다보니

앞에 두 줄은 프라하 음악원 교수님들이 앉아 계셨다.

아이고 부담스러워....

뒤로 가고 싶었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미 공연장은 꽉 찼고 빼 뜨라 교수님의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 고개를 숙이고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몇 분의 교수님이 내게 말을 거셨다. 대부분 재림이의 입상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짧은 체코어로 감사합니다만 연발하고 빨리 이 불편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교수님 한분이 내게 커피를 한잔 가져다주셨다.

긴장을 풀며 차를 마시는 사이 무대의 불이 켜졌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하는 재림이보다 내가 더 떨렸다

매번 연주회마다 본인은 집중해서 연주하는데 나는 늘 조마조마하며 연주를 즐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연주는 나를 집중하게 했다. 내 아들의 연주란 것도 잊고 연주에 쏙 빠져 들었다

하이든을 너무 깨끗하게 잘 연주해서 깜짝 놀랐다.


입학할 때 가장 까칠하게 평가하셨던 교수님이 내게 와서 재림이의 연주가 정말 많이 향상

되었다고 칭찬하셔도 별로 실감하지 못했는데 연주를 들으며 비로소 느껴져 왔다.

5년간의 유학생활이 연주에 녹아들고 있었다.


저 곡을 저렇게 연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첼로와 함께 보내야 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왔다.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연습한 날들이 이제 조금씩 연주에 묻어나고 있었다.


처음 유학 올 때의 재림이의 연주를 생각하면

항상 위축되고 소심했는데 이제 곡을 즐기며

연주 허는 모습을 보며 새삼 빼 뜨라 교수님께

감사하다. 아마 강압적이고 주입식

교육이었으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재림이의

성향상 유학생활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도 자율적으로 열심히 했지만 늘

동기를 부여해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교수님의 레슨 방식은 수업에 임하는 태도를

진지하게 했고 책임감을 가지도록 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우리는 뻬뜨라교수님과 재림이의 연주를 보러 와 준 몇 분의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후 볼타바강가의 레스토랑에 갔다.


재림이는 홀가분한 얼굴로 모처럼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했다

평소에 연주회를 앞두면 거의 뭘 먹지를 않는데

큰 연주 하나를 끝내고 나니 식욕이 돌아오는가 보다.

달달한 흑맥주 한잔을 시켜 둘이서 한 모금

마신 후 립과 스파게티를 시켜서 먹었다.

프라하에선 식사 전에 음료는 무조건

사켜야해서 우린 생강 음료나 흑맥주 한잔을

어쩔 수 없이(^^)시키곤 했다.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난 별로 입맛이 없었는데 재림이는 엄청 잘 먹었다.

그동안 못 먹은 것 다 보충하려는지 내 것까지 가져가서 싹싹 먹어치웠다.

그동안 말수도 적고 법도 잘 안 먹어 신경이 쓰였는데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었다


식사 후 우리는 볼타바강가를 따라 걸으며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다.. 재림이는

유학생활의 고충들과 군대 얘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남자애라 군대 문제가 가장 큰 장애이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졸업을 할 경우 학업을 다 마치고 군대를 가면 좋은데 아무래도 졸업이 좀 더

늦어질 것 같으니 차라리 군대를 먼저 다녀오면 어떨지 생각 중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심적으로도 지쳐있어 군대를 다녀와도 좋긴 한데 문제는 학교에서 2년이라는 기간을 휴학을 시켜줄지가 의문이었다. 체코는 우리나라처럼 의무 군입대가 아니어서 군대 때문에 휴학한다는 것을 받아줄지 알아봐야 했다. 5년간의 유학생활 동안 아이는 너무 지쳐있어 어떤 식으로던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연주회가 끝난 며칠 후 우린 뻬뜨라 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재림이의 군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고 싶다고 하니 요즘도 그런 제도가 있냐며 놀라워하셨다.

그리고 학업을 중단해야 할 상황에 대해서 많이 염려하고 걱정하셨다

뻬뜨라교수님은 본인도 옛날에 군악대에서 복무했지만 지금 체코에선 의무 군입대라는 건

없는 제도여서 학교 측과 상의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이의 고충을 이해해 주시고 해결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며 다독여주셔서 감사했다.


재림이가 빼 뜨라 교수님의 제자가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입학 오디션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 드보르작 연주 실황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프라하에 왔을 때 재림이의 연주를 보신 교수님들은 드보르작을 저렇게 엉터리 음정으로 연주할 수 있냐며 고개를 저었다고 하셨다. 하긴 드보르작의 나라에서 더구나 드보르작이 총장을 지낸 프라하 음악원에서 드보르작의 음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체코 교수님들에게 재림이의 연주는 정말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함께 심사를 보셨던 뻬뜨라 교수님이 고등학생이 드보르작 전악장과 다른 몇 곡의 1시간짜리 연주를 다 외워서 하지 않냐고 저것도 음악적 능력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총장님께서 그러면 뻬뜨라교수님이 저 학생을 맡아서 지도하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고 교수님이 흔쾌히 승낙하셔서 입학이 결정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최종 합격은 아니었다. 1년의 시간 동안 체코어를 공부해서 1년 뒤 다시 체코어로 인터뷰와 이론과목을 시험 쳐야 했다. 그래서 처음 일 년은 까렐대 부속 어학원인 우욥에서 오전엔 체코어 과정을 오후엔 프라하 음악원에서 음악수업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일 년 뒤 까렐대 어학원에서 최고 성적인 비보르네를 받고 1년 단기 체코어 과정을 졸업했다

프라하 음악원도 체코어로 인텨뷰와 이론시험을 치고 또다시 연주 실기 시험을 통과한 후에

전액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6년간 무료로 공부하게 된 것이다


뻬뜨라교수님은 참 열린 분이셨다. 레슨을 하실 때마다 일방적인 주입식이 아닌 재림이의 의사를 물어보고 존중해주셨다. 항상 다음 수업에 할 곡을 제시해 주신 후 재림이가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다. 매 수업 때마다 교수님은 곡에 대한 질문을 3가지 이상 준비해서 가져오도록 했고 덕분에 재림이는 그냥 단순히 연습만 해가는 것이 아니라 곡에 대해 분석하고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질문에 익숙지 않았던 재림이도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질문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공부하며 교수님과 폭넓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프라하에 갈 때마다 교수님은 수업에 나를 초대하셔서 청강하게 하셨다. 매번의 레슨이 재림이에게는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그건 단순히 교수님이 어렵고 무서워서가 아닌 수업에 대한 진지한 열망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참으로 유쾌하시면서도 레슨을 하실 땐 예리하고 정곡을 찌르셨다. 학생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다음 수업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할 과제를 스스로 공부하도록 항상 유도하셨다.


교수님의 레슨 방식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

을 지도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소 강압적인 나의 래슨 방식은 조금씩 바뀌게

되었고 학생들과의 열린 대화는 다음 수업을 위한

동기와 자극제가 되었다


빼 뜨라 교수님

코로나로 인해 다시 유럽에 나가지 못하고 뵙지 못한 지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프라하성이 보이는 강가의 교수님 방에서 다시

그분이 레슨 하시는 걸 보고 싶다

어둠이 내리는 프라하성을 바라보며 까렐교위의 거리의 예술가들의 음악을 다시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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