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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형이네

알프스의 노래

by 박민희


여행을 하면서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는 것은 큰 행운이다. 스위스 일주를 하면서 여행 첫날부터 우리와 한 가족이 되어 늘 같이 밥을 먹은 시형이네, 과묵하고 씩 웃는 모습이 멋진 시형이가 여행을 다녀온 후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워낙 조용해서 묻는 말에 씩 한번 웃어 주고 그다음은 침묵인 시형이가 이상하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해서 여행 내내 우리는 서로 한 가족처럼 서로를 챙기며 같이 다녔다


누나 같은 시형이 엄마도 너무 동안이라 꼭 오누이처럼 보였다. 첫날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같이 밥을 먹었다. 시형이 엄마가 우리에게 와인과 맥주도 자주 사 주어 우린 덕분에 술꾼이 다 되었다. 원래 술을 마시지 않는데 프라하에 갈 때마다 재림이랑 흑맥주 한 잔 시켜서 나누어 마시던 습관이 이번 여행에서도 식사 때마다 시형이 엄마가 와인을 사 주셔서 음주를 즐기곤 했다.


엄마와 아들이 다 조용해서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도 있는 듯 없는 우리 곁에 항상 같이 있어 주었다. 예전에 재림이가 프라하에서 유학할 때 우리가 트램이나 버스 안에서 얘기를 하면 가끔씩 사람들이 우리를 놀란 눈으로 쳐다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재림이가 ‘엄마 목소리 낮춰야 해요’ 하고 눈치를 주면 놀라서 멋쩍게 고개를 숙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재림이가 귀국하기 전 동유럽 일주를 함께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시형이네를 보니 그때의 우리도 엄마와 아들이었다.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우린 조금 시끄럽게 돌아다녔는데 시형이네는 정말 조용했다. 그렇다고 말이 없는 건 아니고 소곤소곤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여행하는데 예전에 재림이와 나는 제법 소음이 심한 여행객이었던 것 같다. 우린 감탄사도 엄청 많이 연발하고 둘이 목소리도 톤이 높아 조금만 크게 말해도 사람들이 둘이 싸우나 싶어 쳐다보기도 해서 여행 내내 주위 사람들이 많이 웃었는데 시형이네는 정말 조용한 가족이었다.



그 시형이가 취리히에 갔을 때 시내투어를 마치고 생갈렌으로 이동하기 전 가이드가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해서 단체로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이 엄청 불편하고 남녀 딱 하나씩만 있어서 숫자가 적은 남자 여행객은 금방 볼일을 보고 나왔는데 여자분들은 숫자가 많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지나도 시형이네가 오지 않아 걱정이 되어 찾으러 갔더니 시형이 엄마가 맨 마지막에 줄을 서 있어서 그때까지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시형이가 화장실 입구에서 딱 버티고 서서 엄마를 기다려 주고 있었다


. 시간이 꽤 흘러서 걱정이 되어 뛰어갔는데 화장실 입구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시형이를 보니 피식 웃음도 나고 대견하기도 했다. 말이 없지만 속 깊은 시형이가 시형이 엄마는 얼마나 든든했을까? 예전에 재림이와 함께 유럽여행을 할 때도 같이 여행하던 분들이 그렇게 부러워하셔서 든든했는데 이번엔 내가 시형이네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때가 많았다.


재림이 녀석은 지금 군대에 가 있어서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는데 시형이네를 보니 그때 함께 유럽여행을 다닌 게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음이 새삼 느껴졌다. 여행 내내 재림이 생각이 많이 났지만 시형이네가 그 빈자리를 많이 채워 주고 많이 웃게 했다. 과묵한 가족이었지만 분위기도 잘 맞추어 주고 항상 우리를 배려해 줘서 정말 한 가족 같았다


. 사실 패키지여행을 다니면 식구가 많으면 상관없지만 혼자나 둘이 올 경우 밥 먹을 때마다 다른 팀과 함께 앉아 먹어야 하는데 이게 은근히 불편할 때가 참 많다. 서로 배려하고 애기도 나누면 좋은데 한마디 말없이 밥만 먹고 일어서야 할 때도 있어 머쓱할 때도 많은데 이번 여행은 시형이네랑 첫날부터 가족처럼 너무 편하게 같이 밥을 먹어서 참 행복했다. 매일 같이 여행하고 같이 밥을 먹어 정도 많이 들었는데 마지막에 공항에서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와서 많이 서운했다.



시형이에게 선물이라도 하나 사 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사 주지 못하고 와서 여행을 다녀와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이번엔 나도 재림이를 데리고 같이 한 번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동생을 좋아하는 재림이라 아마 둘이 얘기도 잘하고 친하게 지낼 것 같다. 다음에 같이 여행을 하게 되면 이번엔 내가 와인과 맥주도 대접하고 함께 퐁듀를 먹었던 그리에르 치즈마을에서 하룻밤 머물며 알프스의 별을 보며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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