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이제 생명주는 영으로 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베드로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은
여전히 천연적이었고 옛사람 안에 있었다.
그들은 주님의 위임을 수행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경륜적인 충일함을 받아야 했지만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에 의해 그들은 더 훈련받고 공과를 배워야 했다.
40일 동안 주님은 나타났다 사라지시기를 반복하며 제자들의 믿음을 훈련하며 온전케 하셨다.
3년 반의 주님의 보이는 임재는 제자들을 매혹하고
그분을 따르게 했지만 그들 존재의 변화됨은 거의 없었다. 주님의 보이는 임재는 기적과 병 고침과
그들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 주었기에 쉽게 따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는 사실상 그분 자신이 우리의 삶이 되신 것이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뿐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필요이시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복음서의 베드로와 열한 제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충일함을 받은 제자들은 더 이상 복음서의 천연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그 영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주님을 극도로 살아내고 충만함으로 외적으로 충일되어야 한다.
우리의 참된 위임은 그 영의 충만함을 누릴 때에 온다. 주님을 누리지 않고 주님과 하나 되지 않고 어떤 것도 스스로 하려고 하지 말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구속된 인성 안에 우리는 그분의 신성을 채워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다. 어떤 과정을 통과하던지 어떤 삶을 걸어가던지 우리는 매 순간 그분을 호흡하고 부르며 주님을 누림으로 그분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모든 것들에 대한 유일한 답이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 안에서는 끊임없이 목마른 자들이다.
그녀는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지만 여전히 목말랐고 만족하지 못했다.
여섯 번째 남편도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정오에 여전히 물 길러 와야 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우리는 우물가의 여인처럼 얼마나 많은 남편들을 두었던가?
한 남편 두 남편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지만 결국 참 만족은 없다
인생의 정오에서 참 만족이신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가장 목마를 때 한낮의 더위가 우리로 정오에 물 길러 나오도록 등을 떠밀 때 그분 앞에 손들고 나오기 원한다.
그분의 찾으심은 얼마나 기묘한지
그분의 돌보심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우물가 외진 곳에
인적이 드문 한낮의 정오에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죄 많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우리를 위해
먼 길 돌아서 우리를 위해 그곳에서 앉아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