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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Apr 03. 2021

해외에서의 수지침

갯새암<<내어머니의 샘>>

 

         

수지침을 배워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외국에 나갈 때이다. 해외에 있으면 아플 때 제때에 치료하는 게 힘들 때가 많다. 특히나 급성 위염이나 치통 같은 걸 앓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아플 때가 많다. 학생들을 데리고 잘츠부르크에 음악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각지의 대학에서 온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단체로 한 달 정도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캠프 일정을 소화해 내다 보면 꼭 급한 환자가 한두 명 생겼다. 거의 매일 레슨을 받고 몇 시간씩 연습하고 마지막엔 연주까지 해야 하는 일정이라 중간쯤 지내면 다들 지치고 힘들어 어딘가 탈이 나곤 했다. 30명 가까이 되는 우리 팀은 교대로 배탈 두통이 와서 수지침으로 응급처치를 해 주게 되었다.


캠프 일정 가운데 툭하면 아픈 학생들 치료해 주느라 덕분에 음악 선생님이 아닌 수지침 선생님으로 통했다. 그쪽에 의사도 있고 약국도 있었지만 두통이나 급체는  수지침이 즉효가 있어서 한번 치료를 받은 학생들이 다른 친구를 데려와서 어떨 땐 내 일정에 무리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해외에서 아프면 얼마나 서럽고 힘든지 아는지라 가능하면 처치를 다 해 주었다. 캠프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주말에 관광버스로 1박 2일로 비엔나를 갔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유럽에 왔어도 관광 한번 제대로 못한 우리는 모처럼 비엔나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비엔나에서 유명한 립 레스토랑에 간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 입에 맞는 돼지 등갈비를 맛나게 먹었다. 3주간의 바쁜 일정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못 먹기도 한 우리는 그날 좀 무리하게 갈비를 먹었다. 다들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호텔 숙소에 들어왔는데 호출이 시작되었다. 같이 간 선생님 한 분이 체해서 약을 먹어도 내려가지 않고 속이 너무 불편하다는 거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항상 수지침을 상비하고 다닌지라 다행히 곧바로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속이 불편해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선생님은 좀 살 것 같다며 연신 미안해했다.


한숨 돌리고 방에 돌아왔는데 이번엔 연세대에서 온  선생님이 급하게 호출을 하셨다. 학생 하나가 립을 먹다가 치아 신경을 건드렸는지 아파서 어쩔 줄 모른다는 거였다. 가서 보니 잇몸이 퉁퉁 붓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손에 상응점을 찾으니 펄쩍 뛰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자리에 사혈을 하니 까만 피가 나왔다. 소독 후에 붙이는 수지침을 그 자리에 붙이고 통증을 줄이는 혈에도 침을 붙여 주었다. 치료하고  선생님이랑 잠깐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학생이 이제 살 만하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눈을 흘겨보며 “어지간히 먹지 이녀석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솔해오신 선생님도 많이 놀랐는지 내 손을 잡고 연신 감사해했다.


          

다음 날 아침에 만난 그 학생은 얼굴에 부기가 다 빠지고 더 이상 통증은 없다고 했다. 나는 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또 아플 수 있으니 음식을 주의해서 먹으라고 당부했다. 캠프를 마치기까지 같이 갔던 팀의 학생들이 제법 많이 내게 치료를 받았다. 덕분에 내 제자들은 연주보다 수지침으로 더 나를 자랑스러워해서 어이가 없었다. 일정을 다 마치고 한국으로 올 때쯤엔 유명인사 아닌 유명인사가 되어 있어 아프면 내게 손을 내밀고 침 맞는 흉내를 내는 학생들 때문에 웃기도 했다.


캠프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

같이 갔던 각지의 대학에서 온 선생님들은 자기들도 한국에 가면 수지침을 꼭 배워야겠다며 내게 감사인사를 했다. 다시 한번 음악 선생님이 아닌 수지침 선생님으로 인정받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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