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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Apr 03. 2021

수지침으로 만난 이웃들

갯새암<<내 어머니의 샘>>

 

임상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좌측 마비가 와서 근육이 경직된 중풍병자인 한 어부를 치료하게 되었다. 이분은 좌측 간실로 풍이 온 경우라 언어장애는 없었다. 지인들과 서생 바닷가 횟집에서 회를 먹은 적이 있다. 주인아주머니는 혼자서 열심히 회를 뜨고 손님 치다꺼리에 여념이 없는데 남편은 한쪽 구석에서 술을 마시며 계속 술주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손님인 줄 알고 주인아주머니께 시끄러운 손님을 좀 조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는 죄송하다며 사실은 자기 남편인데 몇 개월 전 갑자기 풍이 왔다고 했다. 대학병원을 비롯해 한의원 등 안 가 본 곳이 없는데 별 차도가 없어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낯빛이 까맣고, 좌측은 마비가 심해서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불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아주머니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고 아저씨도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게를 나오기 전 나는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혹시 괜찮으면 수지침을 한번 놓아 드려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병이 진행된 지 이미 오래고 한의원에 가서 침도 수없이 맞았지만 저 모양이라 별달리 방법도 없으니 한번 해 보라고 허락했다.

         

그래서 다음 날 오후 시간 약속을 정해 집으로 찾아갔다. 복진을 해 보니 좌측 간 실에 위실도 많이 심했다. 풍이 오기 전에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소화가 안 되고 체기가 심해 약을 먹고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마비가 왔다고 했다. 일단 왼손에 침을 놓으려고 보니 손이 까맣고 굳어 있어서 손바닥에 침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사혈침으로 몇 군데 피를 빼는데 처음에는 피가 나오지 않다가 찌른 부위를 압박하자 검붉고 끈적한 피가 많이 나왔다. 손에 침을 놓는데도 통증이 없다고 했다. 반대로 오른손에 침을 놓으니 비로소 조금씩 따끔거린다고 했다. 침을 놓은 후에 뜸까지 뜨고, 마지막으로 서암봉을 붙여 준 뒤 3일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왔다

.

중풍 환자는 상당히 치료가 까다롭고 임상경험도 부족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수지침 치료가 너무 재미있어서 환자만 보면 치료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또 왠지 모르게 그 젊은 부부에게 마음이 많이 쓰였다. 3일 뒤 다시 만난 부인은 밝은 얼굴로 남편이 침을 맞은 후 몸이 한결 가볍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용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치료해 주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는 어느 날 침을 놓으려고 손을 만지는데 깜짝 놀랐다. 까맣고 딱딱하던 왼손이 붉은빛이 돌며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처음엔 오른손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보니 왼손이 맞았다. 그리고 침을 놓으니 따끔거린다며 반응을 보였다. 침을 빼면 여전히 침을 놓은 자리에서 까만 피가 많이 나왔다. 남편 분은 다리를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며 계속 침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매번 그 시골마을까지 가는 게 보통일은 아니었지만 난 기왕 시작한 것 한 달 정도는 침을 놔주기로 결심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침을 놓으러 갔더니 남편 분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아파서 병원이라도 갔나 싶어 부인에게 묻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왔다. 며칠 전부터 다리 마비가 많이 풀려 이제 혼자서 살살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도 되어서 아직 절대로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침을 놓는데 왼손이 거의 다 펴지고, 까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것도 사라져 연한 붉은빛의 부드러운 손이 되어 있었다. 이제 침을 놓을 때마다 따끔따끔하다며 엄살을 부렸다. 침을 놓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엔 침을 놓으러 가면 남편이 집에 없어서 부인이 찾으러 다니곤 했다. 나는 이제 그만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치료를 마무리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다. 두 분 다 내게 너무 미안해하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좋아서 한 거니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주의사항을 말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알려 주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한 달간 매주 두세 번씩 치료해 주러 가는 길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골이라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았고 개도 많은 동네에 혼자 가는 게 무섭기도 했었다. 나는 개를 유독 무서워하는데 이 동네엔 큰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때가 많았다. 그래서 매번 갈 때마다 개가 있는지 긴장하며 다니곤 했다.  

        

걷지도 못하고 늘 누워만 있던 환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부인을 돕는다고 하니 홀가분하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부인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새삼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치료를 종료한 지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밤에 중풍환자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가족과 함께 자기네 횟집에 한번 올 수 있냐고 물었다. 덜컥 더 나빠졌는지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남편의 차를 타고 바닷가 시골마을로 갔다.


 횟집에 도착하니 손님은 아무도 없고 불만 켜져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부부가 환한 얼굴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식탁에는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고 싱싱한 회가 중앙에 놓여 있었다. 치료를 해 주었던 그 남편 분이 오늘 드디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시작했다고 했다. 바다에서 잡아 온 싱싱한 횟감을 선생님께 맨 처음 대접하고 싶었다며 어서 앉으라고 했다.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우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함께 잔칫상을 즐겼다.


 두 분은 이것저것 횟감 이름을 얘기해 주며 많이 먹기를 권하셨다. 살면서 비싼 회를 그렇게 푸짐하게 먹어 볼일도 다시는 없으리라. 즐거운 식사 끝에 두 분의 나이를 물어보니 우리와 비슷했다.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라 40살은 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우리보다 겨우 몇 살 더 많았다. 수지침 덕분에 젊은 한 가정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도록 도움을 주게 되어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수치침 치료를 하며 조금씩 임상의 범위도 넓어졌다.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이 우리 집에 자주 들락거렸다. 특히 남편 회사 부장님들이 점심시간마다 침을 맞으러 오셔서 나중에는 남편에게 그만 좀 모시고 오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떤 병이든 오장육부의 밸런스를 맞추어 주면 치료 효과는 정말 빨리 나타났다. 인체를 음양으로 나누어 병이 온 근원인 오장육부의 허와 실을 보하고 사해서 균형을 맞추기만 하면 치료 효과는 정말 놀라웠다. 몇 년간 중풍, 퇴행성관절염, 당뇨, 원형탈모증 등 다양한 병을 치료해 주었다.  내게 침을 맞으려고 오는 환자들 때문에 한동안 우리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해 준 덕분에 침 값이 만만찮게 들었지만 고마움을 표현하는 환자들이 가져다 놓은 제철 과일과 채소들로 냉장고 안은 늘 넘쳐났다.           

아마 내 인생에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베풀기도 하고 받기도 했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사택에 처음 들어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으며 많이 아팠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사택 식구들에게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했다. 내 몸도 그때 가장 건강해서 45㎏의 정상 체중에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후 몇 년간은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지인들도 웬만해선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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