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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침을 배우다

갯새암<<내어머니의 샘>>

by 박민희


체질식이 내 머릿속에서 잊혀 갈 무렵 수지침이 새로이 TV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체의 모든 병을 손에다 자극을 줘서 치료하는 방식이었다. 수지침이 TV 고정 프로그램에 등장하자 사회적 관심도 높아져 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수지침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수지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수지침을 배우게 되었다. 원자력 사택의 친한 엄마들이 수치침을 배워서 봉사활동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 체질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남아 있던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함께 배워 보기로 했다. 다들 초급을 배울 때는 재미있게 배웠는데 중급에 들어가니 너무 어렵다며 하나둘씩 다 그만두었다. 결국 심화과정에 들어갈 때쯤엔 나만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체질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으며 음양오행에 대한 이론을 충분히 공부한 후라 수지침에 대한 이론이 너무나 쏙쏙 들어왔다. 그리고 수지침을 공부하면서 왜 체질침이 나에게 맞지 않았는지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다.

동양의학은 음양오행에 따른 이론에 기반을 두는데, 수지침에선 우리 몸을 좌우로 나누어서 치료한다. 그래서 좌측이 실하면 우측이 허하고, 음인 장이 실하면 양인 부는 허하다고 한다. 실제로 중풍이 오신 분들을 보면 좌측이나 우측으로 나누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좌측 양실증 중풍은 주로 남자들에게 많이 왔고, 이 경우는 근육이 오그라들며 경직되어 있으나 언어장애는 거의 없었다. 우측 신실증 중풍은 주로 여자들에게 많이 왔고, 이 경우 대부분 근육이 풀려 있으며 언어장애가 함께 왔다. 주로 비만인 분들이 좌우 교대로 오는 음실증 중풍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깨어나서 치료하고 나면 근육 경직이나 언어장애와 같은 후유증이 거의 없는 게 특징이었다.

수지침의 이론에 흠뻑 빠져 기장지회에서 모든 과정을 다 마친 후 부산대에서 음양 맥진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무렵 국가에서 처음으로 수치침 민간의료 자격시험이 시행되었다. 학술위원 다음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치른 첫 시험에는 전국에서 수많은 수지침 인구가 동시에 몰려와 용산의 한 고등학교 교실마다 꽉꽉 채워서 시험을 쳤다. 부산에서도 버스 몇 대를 대절해 갔으니, 그 당시 수지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시험은 오전에는 수지침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과 임상 과목을, 오후에는 전통 한의학에 따른 침구경락과 보건 위생법에 대해 치러졌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지 2시간 동안 봐야 할 시험문제를 15분 만에 다 풀었다. 빨리 나가서 오후에 있을 침구경락과 보건위생법에 대한 교재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시험지를 내고 나가도 되냐고 감독관에게 물었다. 그는 시험을 포기하더라도 25분은 채워야 나 갈 수 있는데 정 힘들면 20분 후에 나가라고 했다. 다시 한번 답안지를 확인하고는 25분이 되자마자 앞으로 나갔다. 감독관은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아 들고는 시험지에 체크해 놓은 답을 눈으로 죽 확인하더니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날 감독관으로 오신 분들은 다 학술위원으로 수지침으로 대학이나 방송에 강의를 나가는 분들 또 각 지회의 지회장님들이었다. 시험을 포기하는 줄로 알고 25분을 채우고 나가라고 했는데 20분 만에 다 풀었으니 놀라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이분은 오후에 침구경락과 보건위생법 시험을 칠 때 내 뒤에 와서 잠깐 멈추고 내 시험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지나가셨다. 침구경락은 전통 한의학이라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게 어려웠다. 특히 족삼리혈을 묻는 문제에 대해 답이 생각나지 않아 상당히 고심했다.


간, 신, 비의 혈이 모이는 곳으로 몸에 문제가 있을 때 이 혈 만 자극해도 웬만한 것들은 다 해소할 수 있는 명혈로 수지침 경락으론 E38번이었다. 그런데 전통 침구 경락에서 족삼리 혈이라는 게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보건 위생법에서 한 문제를 틀려 전체 만점은 맞지 못했지만 제1회 민간자격시험에서 수지침 전문가 자격증을 땄다. 돈을 받지 않으면 정식으로 임상을 해도 되는 자격을 갖추어서, 매주 군청에서 시행하는 의료 자원봉사를 몇 년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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