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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Apr 06. 2021

단식원에서 만난 밥 따로 물 따로

갯새암<<내 어머니의 샘>>


        

현미채식을 하는데도 살은 더 이상 빠지지 않았고 10년간 45㎏을 넘어 본 적이 없던 내가 통통하다 못해 이젠 목숨 걸고 다이어트를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한때는 어떻게 하면 살을 찌울까 고민했는데 이제 살이 너무 쪄서 원피스를 입어도 올록볼록 태가 안 나고 입던 옷들이 죄다 꽉 끼어 사이즈를 한 치수 늘려서 옷들을 사야 했다. 어느 날부터는 많이 먹지 않는데도 먹는 게 다 살로 가는 느낌이었고, 얼굴엔 때 아닌 여드름이 극성을 부렸다. 갑자기 다이어트가 숙명으로 여겨졌다.  

   

난 또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관한 여러 책들을 보며 단식을 해서 몸 안의 독소를 청소해야 다시 정상적인 체중으로 돌아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경기도에 있는 자연 단식원에 일주일 동안 입소했다. 그냥 단식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광양 수목원을 산책하며 걷기와 요가 프로그램을 병행하였다. 첫날 입소하고 며칠간은 생수만 마셨다 같은 방에 배정된 분이 TV 프로그램의 먹는 방송만 계속 틀어 놓고 거의 저녁 내내 친구랑 통화하며 단식 끝나면 뭘 먹을지에 대해 얘기해서 좁은 방에서 둘이 같이 지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수목원에 가서도 자유시간이 되면 몰래 무얼 사 먹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서 나중엔 같이 어울리는 게 피곤해졌다. 하긴 사람이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클 텐데 생수만 마시며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보통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돈만 내면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물만 마시며 몇 시간씩 걷는 일이 고역이긴 했다. 3일째부터는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 가지고 있던 야채효소를 생수에 타서 마시기 시작했다. 살은 빨리 안 빠져도 효소 단식이 독소 배출에 효과적이라 믿었기에 물만 마시는 단식보다 훨씬 안전하고 견디기 쉬웠다.

          

단식원에서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졌다. 특히 고도 비만한 분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해 쇼크가 오거나 어지럼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가 있었다. 난 일주일 프로그램이었지만 3주나 한 달씩 있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시설이 좋은 단식원이었지만 물만 주고 5만 원씩 받는 단식원의 하루 수입을 계산해 보니 참 쉽게 돈을 번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지만 매일 단식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상황을 보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닌것 같았다.

          

저녁 7시가 되면 원장님은 퇴근하고 단식원에는 입소자들만 남아 적막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잘 때까지 먹방만 틀어 놓아서 딱히 할 일이 없던 난 요가실에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음양 식사법인 《밥 따로 물 따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모든 병의 원인은 음양을 섞어 놓은 식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저자의 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밥과 물을 섞어 먹지만 않으면 다이어트를 비롯해 거의 모든 병에 효과가 있어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질 뿐 아니라 달리 돈이 드는 것도 아니어서 나도 실행해 보고 싶었다. 

         

퇴소하려면 이틀이 남아 있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일 먹는 얘기만 하는 단식원의 분위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난 단식원의 원장님에게 퇴소하겠노라고 말씀드린 후 서울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난 첫 번째 음양식 식사를 했다. 밥과 마른반찬, 찌개의 건더기만 먹었다. 물은 두 시간 후에야 마실 수 있어서 갈증을 참기가 좀 어려웠다. 서울에 도착해서야 물을 마시고 커피를 한잔 마셨다.  

        

단식원에서의 5일 동안, 몸무게는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군살이 많이 빠져서 살찌기 전에 입던 옷들 대부분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생각하고 난 본격적으로 ‘밥 따로 물 따로’ 식사를 해 보기로 했다. 처음 며칠간은 체한 듯 목에 이물감이 느껴져서 힘들었지만 아침을 거르고 식후 두 시간 전후로 물을 마시지 않는 점심, 저녁만 먹는 식사법에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살은 그렇게 많이 빠지지 않았다. 대신 변비가 없어졌고 바나나 모양의 변이 나왔다. 바나나 모양의 변은 가끔 물에 둥둥 뜨기도 했다. 참 신기했다. 다이어트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컨디션은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아들 녀석도 과민성 대장염이라 밥만 먹으면 화장실에 갔는데 신기하게도 밥물을 하면서부터 그 증상이 없어졌다. 난 지금도 화장실을 잘 가려면 이 식사법이 가장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어느 날부터인가 이 식사법을 하면 속이 너무 쓰렸다. 국물을 먹지 않고 마른반찬만 먹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밥따로 물따로 식사법은 상당히 연구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많은 의사들과 한의사들도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이 식사법의 우수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식사법을 실천하다보면 갈수록 음식을 단순하게 먹게되고 식탐이 별로 없어진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남들과 다른 패턴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것이 그때는 상당히 힘들어서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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