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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Apr 09. 2021

현미채식의 반란

갯새암 < 내 어머니의 샘>>

   

담낭을 떼어 내고 나니 한 달 정도는 계속 설사를 했다. 그래도 복통을 동반한 소화불량 증세는 없어서 살 것 같았다. 병원에 있을 때 담낭 수술을 했던 외과 주치의 선생님은 나보고 정말 미련하다고 했다. 엄청 아팠을 텐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고 하시며, 이런 경우는 절대 참는 게 미덕이 아니라며 조크를 주셨다. 돌이켜 생각하니 정말 미련한 시간을 보냈다. 웬만큼 아픈 건 수지침을 놓아 해소하곤 했으므로 그렇게 상태가 심각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얼마나 하나님께서 내게 큰 기적을 베푸셨는지….


                        

유럽에서 한 달 동안 있을 때, 담낭에서 돌이 빠져나오지 않은 건 기적 중에 기적이었다. 매일 찾아 먹었던 치즈가 차곡차곡 담낭에서 돌로 쌓여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신기하게도 아픈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아팠는데 말이다. 아마 유럽에서 매일 먹었던 갓 짜낸 신선한 오렌지주스와 야채와 과일, 그리고 질 좋은 원두커피가 몸을 중화시켜 주지 않았을까? 한국으로 돌아온 지 2주 만에 응급실에 실려 갔으니… 어찌 주님의 특별한 돌보심이라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수술을 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한 후에도 늘어나는 체중은 여전히 내 일상의 고민이었다. 예전처럼 복통을 동반한 소화불량 증세는 심하지 않았지만 속은 여전히 불편했고 자주 체기가 있었으며, 꾸준히 체중이 증가하고 있었다. 난 다시 철저히 현미채식에 매달려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하루 한 끼 생 현미를 먹는 것도 추가해서 해 보았다. 그런데 현미밥에 야채 쌈을 먹으면 이상하게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방광염에 걸린 것처럼 아파 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밥을 포기하고 과일에 생 현미를 먹기 시작했다. 생야채를 먹으면 푸른 변을 계속 보고, 생 현미를 먹으면 눈에서 끈적한 이물감이 느껴지며 불편했다. 어느 날부터는 과일과 야채 생 현미만 먹는데도 뒷골이 자주 당겨 왔다. 그리고 점점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해졌다.          

아무리 생 현미와 과일을 소식하며 먹어도 체중은 줄지 않았고, 몸은 너무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 점심을 먹고 나면 식곤증이 너무 심해 수업을 못할 정도였다. 어떨 땐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몇 시간씩 자곤 했다. 밤에 화장실을 계속 가니 잠을 푹 못 자는 게 원인이기도 했다.



뒷골이 당기는 증세가 너무 자주 찾아와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다시 병원을 찾았다. 혈압을 재 보니 공복에도 수치가 150㎜Hg이 넘었다. 몇 번을 재도 140㎜Hg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피검사 결과는 더 황당했다.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고 혈관에 기름때가 많이 끼어 있다고 했다. 과체중에 혈관 나이는 60세…. 게다가 고혈압·당뇨 전 단계라 했다.       

   


이런 세상에… 너무나 황당했다. 유럽에서의 한 달간을 제외하곤 꾸준히 오랜 시간 현미채식을 해 왔는데 이해할 수 없었다. 육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좋은 현미식에, 생야채와 과일만 조금씩 먹었는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몇 년간 정말 열심히 해 온 식이요법의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현미식을 더 잘하기 위해, 현미채식으로 암을 고친 부부가 운영하는 자연생활 교육원까지 다녀왔건만, 정말 내게는 현미채식의 배신이고 반란이었다.      

    


병원을 다녀온 후 난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병원에서는 약을 복용하는 것 외에 운동과 식이요법을 철저히 하라고 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식이요법을 지켜야 한단 말인가… 혈관을 튼튼히 하고 혈액을 맑게 하는 온갖 좋은 자연식을 이미 먹고 있지 않은가…. 내게는 통하지 않는 이 현미채식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답답했다.


 혈관 청소에 좋다는 비트 주스가 내게는 소화 장애를 일으켰고, 양파와 당근을 듬뿍 넣어 만든 카레를 먹으면 속이 쓰려 왔다. 생야채를 먹으면 푸른 변을 보고 설사를 해서 카레로 만들어서 먹었는데 이상하게 먹고 나면 몸이 가렵고 속이 불편했다.  

        


비만을 불러일으키는 인슐린 저항 상태의 온갖 증세가 내게서 나타났고, 분명 살을 빼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와 있는데도 체중을 줄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간헐적 단식까지 병행하며 다이어트에 몰입했지만 정말 힘들게 1㎏을 빼도 체중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무엇보다 공복감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있는데도 계속 배가 고팠다. 몸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계속된 다이어트의 실패로 난 초조 해지고 위축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단식해서 체중을 줄여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체중으로 돌아와 있었다. 10년 전까지 항상 45㎏을 유지하던 체중은 55㎏까지 올라가서 절대 내려오지 않고 떡하니 버티고 서서 나를 괴롭혔다.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한 체중은 호락호락 살을 내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대사 장애’라는 반갑지 않은 군식구까지 데리고 와서 내 몸에 같이 살며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난 혼자 조용히 앉아 왜 이렇게까지 내 몸이 망가졌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신혼 초에 케일에 과일을 갈아먹으며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완치시킨 기억을 떠올렸다. 일단 체중도 문제지만 음식에 대한 과민반응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음식을 먹으면 가렵거나 두드러기가 나고 소화 장애가 일어나는지, 이것이 비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담낭 제거 수술을 한 후부터는 자주 그 자리가 아파 왔고 어떤 땐 심하고 어떤 날은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쓸개즙이 분비되어야 소화효소, 특히 육식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가 나온다. 담낭을 떼어 냈으니 육식을 했을 경우 설사하고 소화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육식을 하지 않아도 어떤 날엔 유난히 그 자리가 아파 왔다.   

        


난 수지침을 공부할 때 배웠던 음식 분류표를 가지고 오링테스트를 통해 내 몸에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들을 구분해서 식이요법을 다시 바꾸어 보기로 했다. 신기한 건 과거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을 때 식이요법으로 먹던 바나나, 참외, 케일, 멜론, 상추, 해산물들이 모두 오링테스트 결과, 적합한 음식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미나 토마토, 당근, 양파, 감자, 파 등은 오링테스트에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난 이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생목이 오르고 신트림이 나며 소화불량 증세와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음식들을 먹었을 때 가려움증과 두드러기 증상도 나타났었다. 또, 혈관청소와 비만에 좋다는 비트 주스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속 쓰림 증세가 나타났다



. 난 오링테스트를 통해 나온 적합한 음식들만 골라서 먹고 몸의 반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단 내 몸이 거부하지 않는 음식으로만 식사를 하니 속이 너무 편안했다. 가려움증이나 두드러기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푸른 변과 설사가 멈춘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변의 색깔이 다시 황금색으로 바뀌어 가며 화장실 가는 것이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가려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꼭 설사나 가려움증을 동반했다. 그래서 몸이 좀 회복되기까지 가능한 한 밖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집에서 내게 맞는 음식으로 먹으려고 노력했다.   

       


음식을 바꾸고 나서 두 달 정도 지나니 체중이 3㎏ 정도 저절로 감량되어 있었다. 신기한 건 음식을 먹는 양은 전보다 늘었는데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배출하니 살이 저절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자 조금씩 먹어도 더는 허기가 지지 않았다. 밤에는 잠을 푹 자게 되고,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몸이 무거워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예전에 ≪밥 따로 물 따로≫ 책에서 밥 물 식사를 하면 세포가 새로워지는 과정으로 처음에 밤낮으로 잠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때 밥물 식사를 할 때는 그 체험을 하지 못했는데 내 몸의 음양의 기운을 맞추어 식사를 하니 한동안은 정말 밤낮으로 잠이 쏟아져 왔다. 그런 때는 정말 푹 자 주었다. 어떤 날은 ‘잠깐만 자야지’ 하고 눈을 붙였는데 잠에서 깨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기도 했다. 이 졸음은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낮에 졸리던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내 몸이 양인지 음인지만 분류하면, 내 몸과 반대의 음식을 섭취해서 그 밸런스를 맞추어 주면 아예 질병 자체가 쉽게 오지 않는다. 수지침에서 인체의 오장육부를 음양으로 나누어 허와 실의 밸런스를 맞추어 평인 지맥이 되게 하면 치료 효과가 정말 좋았던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겠다. 침을 놓아 장부의 허·실의 불균형을 맞추어 놓는 것이 좋은 치료법이긴 하나, 음식을 먹어 아예 병이 올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훨씬 높은 단계라 할 수 있겠다. 특정 음식만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좋아하는 과일과 야채, 곡식, 해조류, 고기 등을 골고루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에 신기한 감지 기능을 장치해 주셨다. 우리가 조금만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를 감지할 수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내게 맞지 않는 음식이 들어오면 온갖 형태의 신호를 보낸다. 가려움과 발진, 때로는 구토와 설사를 동반한 소화불량 증세 같은 것으로….

그래도 계속해서 그런 음식들이 몸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몸은 이 음식의 영양분을 흡수하지 않고 피 속에 둥둥 떠다니게 해서 피를 탁하게 만든다. 또 지방으로 차곡차곡 쌓아 놓아서 비만으로 만들어 준다. 세포가 거부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게 되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병에 걸린다. 왜냐하면 내 몸에 많은 영양분을 넣어도 세포가 영양분을 흡수하지 않으니, 살은 늘지만 정작 세포들은 기아 상태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신기한 건 10년 동안 현미식을 했을 때는 빨리 허기지고 공복감이 심했었다. 밥을 막 먹었을 때는 속이 더부룩하고 그득하여 불편하다가 체기가 가시고 나면 속이 너무 허전하고 공복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탄수화물이 다시 먹고 싶어 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그런데 내 몸이 원하는 음식들을 분류해서 먹으니 적게 먹어도 공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음양 식사법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체질을 분류하고 임상을 해 보니 건강하고 날씬한 사람들은 거의 다 자기도 모르게 대부분 자기에게 맞는 음식들을 섭취하고 있었다. 그분들에게 왜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먹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그 음식들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거나 불편하다고 했다. 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고도 대답했다. 그분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선물해 주신 감지 기능을 충실히 잘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비만인 사람들, 대사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임상해 보면 하나같이 맞지 않는 음식을 수년 동안 먹고 있었다. 물론 맞는 음식도 섞어서 먹고 있었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식사법을 하면서 바뀐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 피부가 맑아지고 고와진다.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해 늘 위에 열이 많아 얼굴에 위열이 올라와 홍조가 있었고, 여드름이나 뾰루지가 자주 났었는데 더 이상 그런 것들이 나지 않고 피부가 매끈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부가 백옥같이 투명한 걸 느낄 수 있었다.      

    

○ 소화가 잘되고 속이 너무 편하다.

음식을 가려 먹으면 과식하지 않는 이상 위가 불편한 증상이 거의 없다.    

      

○ 화장실 가기가 수월해진다.

음식을 가려 먹으면서 대변이 물에 뜨는 날이 많아졌다. 변비와 설사가 가끔씩 있기도 하지만 음식을 철저히 가려 먹은 날에는 확실히 변의 상태가 좋았다. 대변이 바나나 모양으로 물에 둥둥 뜬다.        

  

○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몇 년간 늘 기침을 달고 살고 날씨 변화가 있으면 쉽게 감기에 걸리곤 했는데, 내 몸에 맞는 식사를 하고 나서는 감기를 한 번도 앓지 않았다.


○ 군살이 찌지 않는다.

적게 먹어도 공복감이 없었고 뱃살이 절로 빠졌다.

    

○ 몸에 에너지가 넘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 피로가 쉽게 오지 않는다.

몸이 무거운 증상이 많이 없어졌다. 아직도 체중은 더 줄여야겠지만 하루아침에 찐 살이 아니니 서서히 빠지리라 생각한다.  체중은 많이 줄지 않았지만 확실히 군살이 없어졌다. 허리가 가늘어졌고 55 사이즈 옷들이 편안하게 맞는다. 이게 제일 기분이 좋다.    

  

○ 뒷골이 당기는 증상이 없다.

음식을 먹고 나면 어떤 날은 뒷골이 심하게 당겼는데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음식을 가려 먹고 나선 그 증상이 사라졌다.     


○ 담낭 수술 부위가 아프지 않다.


사실 이게 가장 고통스러웠다. 어떤 날은 수술 부위가 너무 아파서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수술한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상담도 받아 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원래 수술 부위가 가끔씩 아플 수도 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당사자인 내가 느끼는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음식을 가려 먹고 나서는 수술 부위가 거의 아프지 않았다. 음식을 가려 먹기 전에는, 이유도 없이 수술한 담낭 자리가 아파올 때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컸다. 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산발적으로 아프니 더 마음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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