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맨>과 몬스터들
서울 소재 프랑스 철학 대학원 수업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하위 계층은 일종의 좀비와 같아요."
좀비는 인간세상에서 배제된 인물들이다.
사람이라면 사람이고
(웜바디스 - 사랑 때문에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어, 너를 지켜줄게),
아니라면 괴물이다.
(흑인, 평민, 거인, 난쟁이, 수염난 여성 등.. 그 중 흑인이며, 여성은 단연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좀비가 다시 사람으로, 아니 사람의 구실을 하는데 '현재'는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더욱 그러했고, 미래는 혹시..? 가능할까? 라는 기대는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은 잘 보여준다.
1. 바넘은 뉴욕 맨하튼 중심지에 박물관을 구매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건물을 구매하는 데 '대출'은 필수!) 초기에는 이상한 박물관이라는 컨셉을 내건다. 그러나 장사가 잘 되지 않자, 딸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빠의 박물관에는 죽은 것들만 있어요. 살아있는 게 필요해요.") 박제된 동물 대신 세상에서 '박리'된 인간을 모집한다.
모집된 인간은 모두 뉴욕의 중심인 맨하튼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며, 세상과 강제로 분리된 사람들이다. (당시 기준에 따르면 그들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넘에게 우려의 한 마디를 건넨다.
"우릴 무대에 세우면 다들 싫어할 걸요."
그에 대한 응답으로 바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진다.
"그게 포인트야"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뜻 보면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을 위하는 한 마디 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당신들이 특별한(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파격적인 쇼(Freak Show)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정상이 아닌 당신들이 곧 평범한 동물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 수단은 '돈벌이' 수단이다. 이때 한 가지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은 바넘 또한 하위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아내는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상위 계층의 신분이지만, 바넘은 그녀와 결혼했음에도 여전히 하위 계층이다. 서커스 또한 귀족인 필립 칼라일을 섭외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쇼일 뿐이다.)
2. 서커스의 성공은 곧 대중의 관심을 말한다. 이때 관심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긍정적인 관심, 둘째 부정적인 관심. 전자의 경우 서커스는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는 점, 후자의 경우는 '아무나' 세상에 나왔다는 점이다. '누구나' 관람한다는 것은 일반 평민도, 여왕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서커스는 '아무나' 세상의 표면으로 노출시키기에 '그들'에게 불편함 감정을 유발한다.
평론가는 공연을 사기라고 표현하며 군중은 시위를 벌인다. (위대한 쇼맨 스토리 속에서 아쉬운 점은 평론가의 글이 그들의 인권을 나타냈다면, 군중의 시위가 사실은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스토리를 더욱 탄탄하게 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결과물을 가져온다. 전자는 바넘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고, 후자는 그들을 뉴욕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어낸다.
2.1. 바넘은 제니 린드와 '오페라' 순회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신분이 상승한 것처럼 느낀다. 일종의 착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귀족이자 그의 장인인 채리티의 아버지에게 조롱("나같이 미천한 인간은 평생 뛰어봤자 벼룩인데")을 날리며, 자신이 귀족이 된 것처럼 다시는 무시하지 말 것을 장인에게 말한다. 영화의 대사("한 번쯤은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처럼 바넘은 오페라 순회공연을 펼치며 자신이 '진짜'가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니 린드는 귀족의 전유물로 표현되는 '오페라'(당시 오페라는 '대중문화'로 현재와 다르게 누구나 관람할 수 있었다.)의 유명한 가수이지만 바넘과 같은 하위 계층이다. 제니 린드는 자신의 심정을 단 하나의 대사로 표현한다. "부와 명예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모른다". 서로의 과거를 알고 바넘은 '관심'을 제니 린드는'사랑'을 느끼지만 바넘의 갑작스러운(?) 성찰로 인해 둘의 사이는 깨진다.
(이와 같은 결론을 향한 갑작스러운 전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설명할 수 있는데, 짧은 런닝 타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감독의 선택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장치는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스캔들로 인해 바넘의 성취는 '무'로 돌아간다. 이 장치로 인해 바넘은 신분적인 측면과 지역적인 측면에서 어린시절처럼 주변부로 밀려난다.)
바넘은 제니 린드와의 스캔들로 인해 '일시적'이지만 가족을 잃는다. 이때 가족은 귀족인 '채러티'이다. 채러티는 스캔들로 인해 바넘에게 실망하여 그의 곁을 떠난다. 더 이상 그의 곁에 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분상승의 도구는 사라진다. 그는 하위 계층으로 돌아가게 되고, 가족의 빈자리는 같은 '하위 계층'인 단원들이 채워준다. (필립 칼라일 또한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인해 귀족에서 멀어진 상태) 또한 스캔들은 오페라 순회공연을 망치면서 바넘의 자본을 앗아간다. 바넘은 이제 계급에서도 평민이며, 자본에서도 평민이다.
2.2 군중의 시위는 도를 넘는다. 바넘이 순회공연에 열을 올리는 동안 서커스 공연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게 된다. 남겨진 단원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공간은 '빈 공간'과 다를 바 없다. 그 장소에 '동물'보다 못한 생물이 산다고 그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그들은 돌연변이다. 이전까지는 리더의 통제를 따랐지만 그 리더가 부재한다. 그로 인해 대중은 두려움을 느낀다. 통제할 수 없는 돌연변이가 안정적인 세상에 어떤 폭풍을 일으킬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군중은 서커스 공연장에 불(?)을 투척한다. 투척된 불은 돌연변이를 주변부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는다. 서커스 공연장은 불타오르지만 누구도 죽지 않는다. 그들은 사라지면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군중의 시위는 그들을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동시에 바넘이라는 돌연변이의 리더가 돌아오는 장치이다. 다시 돌연변이들은 대중과 같은 계급인 바넘의 통제 하에 놓인다.
그렇다면 건물에 불이 났음에도 그들은 왜 죽지 않았을까? 그들은 대중에게 꼭 필요한 존재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중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해준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유일한 잘못이라면 그들을 돌연변이로 낳아준 '부끄러운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2.3. 서커스 공연장이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시위를 벌이던 군중은 목적을 달성한다. 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군중은 그들을 보고 싶을 때만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이상 군중이 아니다. 그들은 군중에서 벗어나 이제 대중으로 돌아간다. (군중이었던) 대중은 서커스를 관람하기 위해 먼 곳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서커스 공연장이 멀어졌지만 대중은 자신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서 기꺼이 찾아간다. (대중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신분고하 없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구성된 집단을 의미한다.)
서커스 공연장이 뉴욕의 주변부에 위치한다는 것은 독특한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그곳은 유일하게 뉴욕에서 귀족도 평민도 천민도 구분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곳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뉴욕의 '유일한 공간'이다. (위대한 쇼맨은 뉴욕의 음울한 공간은 평민의 공간으로, 밝은 공간은 귀족의 공간으로 나타낸다. 바넘이 축제를 진행하던 장소에서도 문을 사이에 두고 귀족과 단원들의 공간을 빛과 어둠으로 구분한다.)
서커스 공연장이 주변부에 위치하면서 리더가 변화한다. 하위 계층인 바넘으로부터 상위 계층 칼라일로. (이때 둘의 관계는 50:50) 여기서 그려지는 그래프는 색다르다. 신분의 수직그래프가 중간지점으로 봉합된다. 서커스 공연장은 칼라일로부터 출발하여 휠러(서커스 단원의 대표)와 공연장에 비춰지는 귀족 + 평민을 통해 중앙을 점한다. 발레 공연장은 귀족 자녀가 배우는 발레로 시작하여 '땅콩냄새'가 난다며 조롱받은 바넘의 딸이 공연의 중심을 차지한다. 이러한 효과는 마치 세상이 '평등'해진 것처럼 그린다.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3. 당시 신분은 엄격하게 관리됐다. 귀족과 평민이 결혼해서 애가 태어났다고 그들은 모두 귀족이 될 수 없다. 바넘의 딸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바넘의 마케팅이나, 딸의 발레 실력) 그들은 평민일 수밖에 없다. 되물림되는 선천적인 것은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자 '한계'이다. 그 한계로 인해 바넘은 귀족이 될 수 없고,그의 딸 또한 귀족이 될 수 없으며, 칼라일과 휠러가 결혼해도 휠러는 '사람'(백인)조차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대한 쇼맨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주목해야 한다.
3.1. 우리는 신분관계에서 여성의 역할을 눈여겨 봐야한다. 위대한 쇼맨에서 '채러티'가 적극적인 여성이라면, '휠러'는 소극적인 여성이다. 이러한 성격의 차이는 계급에서 비롯된다. 채러티는 귀족, 휠러는 천민이다. 계급은 곧 힘으로 표현된다. 채러티는 바넘의 뒤에서 꾸준히 믿음을 주며 바넘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신뢰를 표한다. 그녀가 귀족이라는 힘을 등에 업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다.
반면에 휠러는 자신의 신분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평민여성'이라는 점을, 더 나아가 '흑인여성'이라는 점을 의식하며 누구의 앞에도 나설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앤 휠러의 이러한 마음은 칼라일과 앤 휠러의 주제곡('Zac Efron, Zendaya - Rewrite The stars')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You think it's easy
You think I don't wanna run to you
But there are mountains
And there are doors that we can't walk through
I know you're wondering why
Because we're able to be
Just you and me
Within these walls
But when we go outside
You're gonna wake up and see that it was hopeless after all"
위 가사는 앤 휠러의 대사 역할을 한다. 첫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칼라일은 모든 것을 쉽게 생각한다. 권력의 최상층인 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You think it's easy) 그러나 앤 휠러는 작은 일 조차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But there are mountains, And there are doors that we can't walk through) 앤 휠러가 소극적인 여성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흑인의 '현실감각'에 기인한다. 1800년대 흑인은 '노예' 계급이다. 어느 국가, 어느 시대가 그렇듯 '귀족-노예'는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다. 칼라일과 앤 휠러가 서로를 인정한다 해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when we go outside You're gonna wake up and see that it was hopeless after all) 이상에 빠졌던 칼라일도 오페라 공연장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만나고 깨닫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이다. (물론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과연 현실도 해피엔딩일까?)
3.2. 영화는 끊임없이 계급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강조한다. 채러티-바넘 사이에 채러티에게 힘이 있다면, 칼라일-앤 휠러 사이에는 칼라일에게 힘이 있다. 힘을 가진 둘은 귀족이다. 전자의 경우 채러티가 바넘의 모든 것을 용서하면 화해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칼라일이 자신의 신분을 놓으면 앤 휠러와 살아갈 수 있다. 그 안에는 '사랑'이라는 매개체가 존재한다. (바넘과 제니 린드 사이에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은 상호작용하는 것이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제니 린드는 평민도 귀족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사랑이 있기에 수직적인 구성이(채러티 - 바넘=칼라일 - 앤 휠러) '평등'으로 봉합된다. 바넘과 칼라일이 동일시 되면서 채러티와 앤 휠러의 관계도 평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적 효과는 바넘이 은퇴 후 칼라일에게 리더를 넘겨주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바넘은 공연 도중 은퇴를 선언하고 코끼리를 타고 가족에게 가며 칼라일에게 리더 자리를 넘겨준다. 그리고 칼라일은 공연 마지막에 앤 휠러와 쇼를 마무리한다.) 결국 수직적 관계는 수평적 관계로 막을 내린다.
4. 글을 마무리 하기 전에 바넘의 존재에 대해 짚어보고 넘어가야 한다. 실제 바넘은 프릭쇼를 진행한 '악질적인 사람'이다. 영화에서 착하고 열정적이며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표현된다고 해서 그의 과오가 모두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욕을 먹는다. 현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현실과 다른 사실을 꾸며냈기 때문이다.
현실을 제외하고 영화에 국한하면 그는 대중과 동일시 된다. 그는 귀족(채러티, 칼라일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과 천민(서커스 단원들)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맡으며, 평등을 추구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평등은 상위 계층이 중간층으로 내려오며, 하위 계층이 중간층으로 올라가며 이루어진다. 평등은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바넘은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을 통해 상위 계층으로 올라섰다 다시 하위 계층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권력을 분산시킨 후 자신이 구성한 '평등의 장'(서커스 공연장)을 대중에게 위임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맡은 바 역할을 다 하고 한 마디를 던진 후 평등의 중심지로 이동한다.
"애들 크는 거나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