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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Mar 09. 2022

� 아픔을 참는 방법

#아픔과고통 #참기 #어려움 #내재된걱정 #투병


� 한 줄 요약

- 아버지의 투병을 생각하다.


✔ 오늘로 총 세 번의 수술을 경험했어요. 앞전 두 번은 수면마취였고, 오늘은 전신마취였네요. 제일 처음 했던 수술은 비중격만곡증, 왼쪽 콧구멍이 비중격으로 완전 막혀 있었어요. 의사샘도 아주 드문 경우라 그랬죠. 그때는 수면마취라 코를 정으로 때리는 그 느낌이 느껴졌어요. 골이 흔들리는 느낌이었죠. 


✔ 두 번째 수술은 오른쪽 약지 손가락 힘줄 잇는 수술이었어요. 농구하다가 궤도를 변경한 농구공이 손가락 끝을 그대로 쳐 버리면서 끊어졌죠. 당시, '아 손가락 또 부러졌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실 농구하면서 손가락만 네 개 부러졌거든요. 정말 어긋난 건 아니고 금 간 정도로 말이에요.


✔ '아 또 병원 가서 부목 대야겠구나' 생각했는데, 추측과 다르게 힘줄이 끊어졌데요. 생각해보니 손가락이 계속 굽어버리고, 펴지지 않았거든요. 아프지는 않았는데, 힘이 1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당시 공군사관학교에 복무 중이었어서, 군의관한테 갔는데 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 근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는 손가락 전문병원을 방문하여 진찰했고, 수술을 받았어요. 사실 아직까지도 군의관 말이 맞는지, 전문의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뭐가 더 정확한지 궁금하긴 하지만 여튼, 그 뒤로 볼링도 못 치는 손가락이 됐어요. 후유증 때문에 힘이 들어가면 통증이 오거든요.


✔ 이때는 아마 부분마취를 했던 거 같아요. 그 때문에 손가락을 수술하는 느낌이 느껴졌어요. 온전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째고-잇고-봉합하는 과정을 느꼈달까요.


✔ 그렇게 인생 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대망의 세 번째! 전신마취까지 하는 코수술을 오늘 시행했어요. 오늘 수술에서 기억나는 건, "숨을 편하게 쉬세요. 마취약 들어가요.", "환자분 일어나세요. 잠자면 안 돼요" 단 두 마디.


✔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다 끝난 거 있죠. 대신 전신마취라 그런지 아직도 헤롱 해요. 수술한 지 한나절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이번 수술은 첫 번째했던 비중격만곡증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에요. 휘어있는 코 뼈를 일부러 부러뜨려 일자로 만들고, 막혀 있는 비밸브를 만들어 줬어요. 일전에 수술을 한번 해서 연골이 부조해 귀에서 떼다가 했어요. 


✔ 하, 여전히 마취가 깨지 않는 느낌이에요. 정신이 몽롱하고, 소화도 안 되고, 마취에서 깨자 마자는 토할 거 같았어요. 또한, 마취가 서서히 깨면서 코가 화끈거리고, 귀에 통증이 느껴지더라고요. 여전히 통증은 지속되고 있고, 무통주사는 서서히 들어가는 중이에요.


✔ 저는 이렇게 아플 때마다 '고통을 참아야 한다.'라고 생각해요. 왜냐고요? 우리 아버지는 이 고통을 2년 간 느끼셨거든요. 암 투병하면서 '목이 마르다', '짜장면이 먹고 싶다.' 등 많은 말들을 하셨었어요.


✔ 당시 어렸던 저는, '왜 목이 마르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더불어 '병원에는 왜 저렇게 가습기가 많은 거야?'라는 생각도 했었죠. 저는 오늘에서야 그 이유들을 깨달았고,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어요. 참으로 불효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게다가 저는 코를 막아놔서 입으로 숨 쉴 수밖에 없어요. 물을 마셔도 바로 말라버리고, 현재는 목이 부어버린 느낌이네요. �


✔ 또한, 아버지는 수술이나 항암치료 후에는 무통주사를 눌러달라고 자주 말했어요. 어렸을 때라 '귀찮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그런 기억 탓인지 지금 제 손에 있는 무통주사를 누르기 어렵더라고요. '아버지도 이해하지 못했던 제가 그걸 누를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 오늘도 그렇고 과거 두 번의 수술도 그렇게 무통주사를 누르지 못했어요. 물론, 누르지 않아도 일정량이 계속해서 들어가니 통증은 크지 않아요. 다만, 화끈거림과 욱신거림은 계속해서 느껴지죠.


✔ 이런 행위를 하는 저는, 과거에 대한 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요. 아버지에 비하면 고작 작은 수술이고, 별 것도 아닌 수술이기 때문이죠. 여튼 과거에 대한 작은 벌을 받듯 저는, 오늘도 무통주사 버튼을 누르지 못해요. 고통을 느껴야 그 잘못을 뉘우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 이런 생각이 들다보니, 아버지의 마지막 상황과 말이 떠오르네요. 


'말라비틀어진 입과 다 헐어버린 입천장은 그가 물조차 마시지 못하게 했고, 말조차 힘겹게 꺼내게 만들었다.

물을 온전히 섭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손수건에 물을 적셔 수분을 공급했고, 먹고 싶어 하던 짜장면은 겨우, 한 젓가락 밖에 넣어주지 못했다.


마시지 못하고 씹지 못하는 그의 입을 바라보며, 현실이 아닐 거라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얼마 후,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고, 어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가 서프라이즈로 관에서 다시 나올 거야!"


그때의 어린 나는 이 사건을 '하나의 이벤트'라 여겼다. 그리고 아빠의 마지막 유언, "엄마를 더 챙겨줘."라는 말을 가슴속에 담아두며, 엄마의 공장 일을 열심히 도왔다.


겨우 중1이며 키도 평균보다 작아 147cm에 불과하던 나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1층에서 지층으로 15kg이 넘는 실을 날랐다.


그 덕분에 현재 나는 튼튼해졌고, 더 단단해졌는지 모르겠다. 

공부하며 공장일과 집안일을 함께 돌보던 나는 힘들었지만 '그 탓'이 아닌, '그 덕분'에 '지금의 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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