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개미핥기 Dec 24. 2020

Moo'tice

#26, 논문 예심, 그 이상의 것

그 당시 나는 만나는 사람이 없었고, 그 사람은 있었다. 그 사람은 내게 그 사람에 대한 불만을 자주 제기 했는데, 그러면서 너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으며, '우리가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사람이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요 누나! 지금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더 잘 챙겨주고 잘 해주세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짓지 않고, 더 환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오구 그랬어요. 알겠어. 그 말 새겨 들을게요."


그 말에는 많은 것이 내포돼 있는데, 그 중 그 사람은 나를 꼬마애 대하듯이 했다. 나는 그 태도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시간들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이성 이상의 감정을 가졌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선을 긋는 일은 확실히 했다. 그러다가 그 일이 터졌다.


그 사람은 논문 예심을 앞두고 무리를 했다. 그 무리탓에 몸져누웠는데, 그 사람의 남자친구가 그 사람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 사람의 남자친구가 친구를 만나느라 그 사람에게 소홀히 한 것이다. 그 사람은 몸도 아프고 일어설 힘도, 밥을 먹을 힘도 없었다고 했다.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지만, '푹 쉬어~'라는 말만 전해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너무 아파서 계속해서 연락했지만, 결국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결국 내게 연락을 취했다. 마침 학교에 있던 나는 죽을 사서 그 사람을 찾아갔다. 아니, 그 사람에 집 앞에 두고 돌아왔다. 여자가 혼자 사는 집 안에 들어간다는 관념이 내게는 금기시 돼 있어서, 나는 문 앞에 놓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연락했다.


'문 앞에 죽이랑 약 있어요. 그거 먹고 빨리 쾌유해요.'


그렇게 연락을 남기고 나는 다시 공부에 몰두 했다. 그 사람이 예심을 치르고 몸살이 났듯이 나 또한, 그럴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정신 없었고 바빴기 때문에, 그렇게 연락을 하고 까먹고 있었다.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다. 그만큼 나는 정신이 없었다.


공부에 몰두하다가 나는 세미나실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놀랐다. 아니 놀랄 수밖에 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ps. 예심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모두가 그렇듯 정신이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사람이 몸살이 난 것처럼 나도 몸에 이상이 왔다. 위장염이 심해서 무엇하나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넣는 순간 고통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겨냈고, 지금은 석사학위를 취득한 상태이다.




작가의 이전글 Moo'ti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