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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Feb 04. 2021

Moo'tice

#45, 무심함에 굴러가버린


일요일 다음 날은 월요일이다. 직장인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월요일이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그렇게 '죽을 상'이었나 보다. 그들 사이에서 나만 유일하게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 곧 있으면 사라져 버릴 그 상쾌한 표정 말이다. 나는 기존 달리던 때와 같이 7.12km를 달렸다. 정확히 우리 집에서 종합운동장이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돌아오는 여정이다.


처음으로 달린 아침의 달리기는 낯선 풍경을 내게 선사했다. 밤의 달리기는 흑백이었다면, 아침의 달리기는 무지개가 하나도 아닌, 열 개 이상이 뜬 날이었다. 밤에는 꺼져있던 네온사인도 켜져 있었고, 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간판들도 눈에 선히 보였다.


또한, 밤에는 혹여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달렸는데, 아침은 그럴 걱정이 없었다. 바라보지 않아도 보이는 바닥이 있었고, 앞에 보일 듯 말 듯 한 가오나시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밤보다는 자유롭게 내 발을 내달리며 달렸다. 이윽고 페이스를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역시 폐결핵 후유증은 쉽게 극복되지 않아.'라고 속으로 외치며, 더 빨리 달리고 싶다는 마음만 가졌다.


힘껏 페이스를 올려 1분을 달린 후, 나는 걸었다. 겨우 1분을 빠르게 달렸을 뿐인데, 방금 전 천천히 30분 달린 느낌이 들었다. 폐결핵의 후유증은 상당했는데, 빠르게 달리면 폐가 아파왔다. 마치 굳은 폐를 내가 억지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고통은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내 다리도 짓눌렸다. 그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약속 장소를 향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에 근접했다.


충분히 쉬어줬으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내 모습은 한낮에 뜬금없이 나타난 좀비가 다리를 질질 끌며 달리는 듯했다. 워킹 데드의 좀비들처럼 달리고 싶었으나, 폐결핵 후유증은 나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부산행의 좀비가 돼 천근만근 나가는 다리를 부여잡고 달렸다. 그렇게라도 달리니 곧 아파트 현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 앞에서 시계를 바라보니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47분. 나는 재빠르게 집으로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머리도 안 말리고 로션만 대충 치덕치덕 바른 뒤에 약속 장소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루트를 검색했다. 그 루트는 집 앞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2호선 지하철을 갈아타는 동선이었다. 예상 시간도 1시간 15분으로 적절했다.


출발하기 전 다시 한번 물품들을 챙겼다. 그런데 내가 지난밤 잘 포장해놓은 '술'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뇌가 굳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저기에 놔두지 않았나?', '내가 다른 곳에 두었나?', '차에서 안 가지고 왔나?', '아닌데, 자기 전에 포장했는데?'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심히 도 깜빡이며 변하는 시계를 바라보며, 전화기를 귀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몇 번의 벨이 반복적으로 울렸음에도 전화기 속 멘트는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초조해진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형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형수 어디 있어?"


형은 내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꼈음에도 내게 물었다.


"뭔데? 왜 네 형수를 찾아?"


참 전형적인 형제의 멘트다. 일단 따져 묻는 이 질문을 통해 나는 '아 우리가 전형적인 형제가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아, 형수 어디 있냐고!?"


그제야 형은 형수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응? 무슨 일이야?"


나는 형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따지듯이 물었다.


"형수, 내 침대 옆에 포장된 술 못 봤어? 그거 오늘 가지고 나가려고 내가 챙겨놨는데 없어졌어. 형수 어디 있는지 알아?"


나는 형수와 통화를 하면서도 집을 계속해서 찾아봤다. 그리고 방을 한 번 더 살펴보는 과정에서 숨어있는 술병을 발견했다. 둥그런 술병은 구석에 굴러가 있었다. 마치, '이놈아 나를 세워놨어야지 왜 바닥에 내팽개쳐놓냐! 그래서 네가 이렇게 나를 못 찾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이 생각을 하는 사이에 형수는 말했다.


"또 이상한 곳에 놓고 찾는 거 아니야? 나 건들지도 않았어. 잘 찾아봐."


사실 나는 술을 발견하자마자 전화를 끊으려고 준비했다. 그 준비 덕분에 형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반응을 했다.


"아, 찾았다. 끊어! 나 나가야 돼!"







ps. 제게는 두 명의 엄마가 있는데, 한 명은 친엄마고 한 명은 형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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