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낮과 밤, 두 얼굴의 풍경
내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술과 에코백을 바라보며 잠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에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담겨 있어 푹 못 잘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다음 날 아침 몸이 너무 상쾌했다. 오래간만에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갔다. 평소에 달리는 밤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보통 달리는 밤의 탄천은 고요함 속에 활기 참이 묻어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 듬성듬성 나있는 불빛은 누군가를 부르듯이 깜빡이는 곳도 있었고, 잠시 쉬어가라며 따스한 빛으로 나를 유혹하는 곳도 있었다.
똑같이 달려있는 조명들이 왜 그렇게 다들, 다른 빛을 뽐내는지, 그에 따라 느끼는 감정 또한 천차만별로 내게 스며들었다. 빛을 흡수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빛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고, 글로써 써내고 싶었다. 가끔은 보름달이 뜨는 날에 가로등 불빛이 아니라, 달빛에 의지하여 달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늘에 뜬 달을 실컷 바라보며, 뒷발을 박차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달을 보며 달리기 때문에 튀어나온 돌부리나 길의 굴곡을 만나면, 술 취한 사람처럼 비칠 거리기도 한다. 그 비칠 거림이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지켜보지 않는다. 주위에는 사람들도 없고 나 혼자만 그곳을 달린다. 그 홀로 됨이 좋아 늦은 밤 달리는 편이기도 하다. 홀로 됨을 느끼는 순간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고, 달리기라는 그 행위에 집중할 수 있다.
'러너스 하이'를 느끼기 위해 극한까지 나를 한 번 몰아붙이기도 하고, 결핵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이렇게 달릴 수 있는 나를 대견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 달리고 나면 항상 신경 쓰이는 부분은 기록이다. 아무리 꾸준히 달려도 그 이상의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한 번은 병원에 방문하여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그 후유증은 쉽게 극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도 그 뒤로는 무리하지 않고, 내가 달릴 수 있는 만큼의 선에서 달리는 중이다.
나를 극한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사라졌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나를 몰아붙인다. 그건 계절에 따른 야외의 온도를 이용하는 일이다. 여름에는 열대야가 있는 밤에 나가 영상 31도에 달린다. 한 번 달리고 나면 머리부터 솟구친 땀이 상의를 넘어 바지까지 적신다. 그 질척거림이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또한, 상쾌함과 뒤엉켜 함께 올라 땀 냄새조차 싱그럽다. 그 냄새로부터 '나는 지금 싱그러운 초원 위를 열심히 달리는 가젤이 된 건 아닐까?'하기도 한다. 물론 얼마 못 가, '힘듦'이라는 맹수에 먹혀버려 '내가 왜 이 짓을 하지?'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겨울에는 -15도에 달려본다. -15도에 문밖을 나서면 바로 생각을 한다. '다시 들어갈까?', 하지만 달리는 곳까지 뛰어가면 금세 웜업이 돼 몸이 따뜻하다. 옷 밖으로 나와있는 곳은 얼어서 깨지는 느낌이지만, 듬세 땀이 흘러내려 그곳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극한(極限)'으로 치닫는 그 온도는 '극한(極寒)'으로 폐부를 찌른다. 한 번은 '달리다 심장마비 걸리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의 온도는 -15도였다. 그리고 체감온도는 -2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달리면서 계속해서 내 정면으로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내가 내뱉는 숨이 곧바로 서리가 되어 내 얼굴을 치는 듯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달렸는데, 한 번 달리면 포기하기 어려운 그 성정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 죽었다면, 아니 달리다가 쓰러졌다면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달렸다. 꼭 내가 얼어 죽을지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온 아침의 탄천은 시원함까지는 아니지만, 선선히 불어주는 바람이 내 몸을 타고 흘러 저 멀리 흘러갔다. 흘러가는 바람을, 따라잡으려고 애쓰는 나의 발놀림은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 바람을 못 쫓을 정도는 아니었다. 상쾌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과 다르게 북적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다양했다. 어떤 목적으로 나와 걷고 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밤에는 무명인이었던 그들이 아침에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얼굴을 뽐냈다. 밤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개성 넘치는 얼굴 너머의 표정은 동일했는데,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죽을 상'이었다.
내일의 내가 싫다는 듯이 말이다.
ps. 어쩌다 보니 옆길로 새서 달리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