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문제는 문제가 아니었고, 해결책 또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선배가 전해 온 말은 '늦을 거 같다'라는 연락이다. 나보고 '먼저 들어가서 메뉴 고르고 주문하고 있어.'라는 한 마디. 그로 인해 나는 천천히 가도 됨을 깨달았고 조급했던 마음을 추슬렀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급함'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천천히 생각을 하니, '문제는 문제가 아니었고, 해결책 또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연락'이었다.
나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취하고, 만남의 시간에 관하여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다급할 필요가 없었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줄 필요도 없었고, 추후에 있을 주차 문제에 관하여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냥 단 한 번의 문자를 보냈더라면, 미리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현재의 상황을 함께 공유했더라면, 이런 자책을 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니, 되려 나에게 어려운 선배이자, 소중한 선배라는 측면에서 이렇게 더 신경을 쓸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고민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런가? 예전에는 선배에게 연락을 할 때 혹은 만날 때,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선배는 한 번도 내게 어려운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만 선배를 어려운 사람으로 대했을 뿐이지. 이렇게 보니 그리고 생각하니 관계라는 것이 항상 쌍방향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나를 편하게 대해준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위치'에 따라 '우리의 위치'가 정해지는 듯하다.
생각이 없었을 때는 이랬다. 대학원에서 선배들을 편하게 대하고, 그들의 글에 대하여 가차 없이 의견을 던지고,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없던 MT도 부활시켜 모두를 데리고 여행을 가고, 감히 쳐다보기 어려웠던 그리고 공부하느라 바빴던 박사 선배님들을 꼬셔서 서울 근교로 캠핑을 가곤 했던, 패기 있던 나는 사라진 것이다.
그때 우리의 위치는 서로가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어쩌면 '불쌍하게 바라보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포기해버린 길을 가고 있는 선배에게, 나의 소중한 논문을 탄생시켜준 선배에게, 나는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현 상황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 마음은 너무나 무거워서 그리고 무서워서, 선배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조차 깊은 고민 끝에 할 수 있었다. 이 고민이 깊어진 이유는 선배가 과거에 내게 했던 말 때문이다.
"왜 내가 석사 논문 토론을 해주면 다들 공부를 그만두지? 벌써 3명이나 그랬어."
이 말에 대하여 나는 선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다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요? 누나?"
이런 얕고 물렁물렁한 종류의 말을 던지며 선배를 위로하려 했던 나의 행위는 한없이 가벼웠다. 그들이 현재의 나처럼 지속했을 고민이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을 던져버렸다. 의지가, 내가 과거에 말했던 방식처럼 쉽게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나 또한 이렇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공부는 무엇보다 현실의 관여를 많이 받는 '존재'였다. 특히, 경제적 여건은 그 대상의 의지를 좌지우지하는 요소였다. 지금의 나처럼 그리고 나 이전에 떠난 그 선배들도,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나왔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목적지를 탐색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 기로에 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선배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나부터 공부를 관두는 이 시점에 어떻게 대변을 해야 할지, 선배에게 연락을 하기 전부터, 만나러 가는 그 시간까지 계속해서 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ps.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