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UX라이터|| 그들의 고난
이전에 올린 글처럼 UX라이팅은 모두가 하고 있던 일이었어요. 그러다보니 UX라이팅만 하는 UX라이터가 부담스러워요. 왜 부담스럽냐고요? 꼭 검사하는 거 같잖아요.
'내가 작성한 문구가 이상하면 어쩌지?', '이 기능을 더 잘아는 내가 작성한 문구가 맞을텐데?', '쟤가 뭔데 내가 작성한 문구를 검토해?'
이러다보니 첫 번째 UX라이터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돼요. 이전까지는 협업을 했던 적이 없다보니, 그 자체로 거부감이 생기는 존재인 거죠. 추가로 이 거부감 때문에 UX라이팅 문구를 검수해달라는 요청 자체가 '글쓰기 숙제 검사' 받는 것처럼 느끼게 돼요. 그래서 UX라이터의 첫 시작은 참 어려워요. 누군가의 결단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UX라이터에게 프로덕트의 문구를 맡기지 않기 때문이죠.
이러한 연장선에서 '국내 회사들이 UX라이터를 왜 뽑지 않을까?'를 생각해 봤는데요. 저는 2가지 케이스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여유가 없는 거예요. 대기업이나 빅테크가 아닌 이상 UX라이터를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 거죠. 사업이 BEP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인력으로 여겨지는 UX라이터를 뽑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국내 UX라이터 직무가 있는 회사를 살펴보면 이런 경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사실 많은 스타트업들이 'UX라이터를 두고싶다'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를 물어보면 간단해요. '토스처럼 하고싶다'라고 하는 거예요. 보통 이 대답이 나오면 저는 다음 말을 건네면서 하지 말라고 해요.
'대표님의 회사는 토스가 아니에요'
그럼 대부분은 포기하곤 해요. 지금 중요한 것은 UX라이팅이 아니라, 회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깨달으니까요. 물론, 그들도 토스처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빨리 포기할 수 있다고 할까요. 모든 디자인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를 토스처럼 바꾸지 않는 이상 UX라이팅인 그대로 따라한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D
다른 하나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케이스예요. 그나마 연이 닿는 대기업이나 빅테크 쪽에 UX라이터를 뽑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기획자나 우리가 더 잘하는데 왜 UX라이터를 뽑아야 하냐?'라는 말들을 많이 해요. 그들이 온다고 해도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사실, UX라이팅으로 특정한 효과 즉, 전환율이나 매출이 증가했다는 데이터가 공개된 케이스가 많지 않아요. 데이터는 회사의 자산이기 때문에 쉽게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라 그런 건데요.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A/B테스트나 UT만 해봐도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요. 저 또한, UX라이팅의 목적과 의도가 부합하면 데이터가 상승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죠.
아 이번 글을 왜 작성하기 시작했는지 알았어요. 최근 애기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UX라이터의 고군분투가 생각나는 구절을 읽어서 인데요. 첫 번째 UX라이터가 자리매김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자리를 잘 잡으면 어떤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 떠올랐기 때문이죠. 전체 내용은 너무 길기 때문에 중간중간 생략해서 올려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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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주 볼썽사나운 섬이 하나 있었어.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에 뒤죽박죽 엉망이었지. 섬에는 모난 돌들이 나뒹굴었어. 또 화산에서 불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는가 하면..
...
지글지글 타고, 꽁꼬 얼어붙고, 울퉁불퉁 바위투성이에, 뒤죽박죽 엉망인 섬에는 바로 괴물들이 살았어. 기괴하게 크거나 작은 녀석부터 뚱보나 말라깽이 또 끈적끈적하거나 바싹 마른 녀석, 비늘이나 사마귀나 뾰루지로 뒤덮인 녀석, 더듬이와 갈고리 발톱과 송곳니가 삐죽 난 녀석
괴물들은 서로 잘난 척하고 질투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흉측한 자기 모습에 홀딱 빠져있기도 했고, 자기보다 더 흉측한 녀석이 있으면 골이 올라 식식거렸지.
...
다른 괴물을 괴롭힐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하기도 했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말이야!
...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아주 이상한 게 나타났어. 자갈밭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거야. 발그레한 꽃잎이 하늘거리는 걸 보고, 처음에 괴물들은 무서워했어. 그러다가 화를 냈지. 꽃을 향해 불을 뿜으면서 무섭게 으르렁거렸어. 이렇게 아름다운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괴물들은 무섭고 기분이 나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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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다른 곳에서도 피어났어. 그러더니 화산 기슭에도 한 송이가 피었지 뭐야. 분홍빛을 띤 예쁜 꽃이었어. 이 꽃을 발견한 노란 괴물은 그만 미쳐 버리고 말았어. 노란 괴물은 저주를 퍼부으며 바위를 향해 돌진하다가 그만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어. 그렇게 이틀 동안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지. 그러다가 깨어나면 또다시 헛소리를 하면서 뛰어다녔어.
...
섬은 술렁였고 자주 소동이 일어났어. 꽃은 점점 더 많이 피어났지. 괴물들은 서로에게 더 많은 불을 내뿜으며 난폭하게 굴었어. 괴물들의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지. 너무나 초조해진 괴물들은 발작을 일으키거나 악몽에 시달렸어. 이번에는 괴물들도 좋아하지 않는 악몽이었지. 괴물들은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혔어. 이제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은 상대방을 꽃 쪽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어. 그런 일을 당한 괴물은 미칠 듯이 화를 냈지.
...
그런 일이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던 어느 날, 모든 게 끝나 버렸어. 연기와 검게 탄 재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그리고 비가 왔어. 처음에는 억수같이 퍼붓다가, 그 다음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보슬보슬 떨어졌지. 밤새도록 그렇게 비가 왔어. 이번에는 얼어붙지 않았어.
새벽에 비가 그쳤어. 이제 엉망진창 섬은 더는 엉망진창이 아니야.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죽은 자리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났지. 하나같이 예뻤어. 징그러운 바다 괴물들도 사라지고 맑고 푸른 바다만 남았지. 꽃들이 활짝 핀 낙원 위에 빛나는 무지개가 걸렸고.
오래지 않아 이 아름다운 섬에 새들이 찾아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