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와 무의미 사이에서
1. 클로드를 혼자서만 열심히 즐긴지 벌써 3달 가까이 됐네요. 클로드 코드로도 쓰고, continue로 로컬 에이전트로도 쓰고 있어요. 원래 토큰이라는 비가시적 재화가 무서워서 잘 안 썼었어요. 그래서 AI 프로를 구독하고 있는 구글 위주로 썼죠. 또한, Antigravity가 너무 매력적이었거든요.
2. 개발 1도 모르는 제가 아이템을 기획하자마자 곧바로 구현하고, 수정도 하면서 원하는 모습을 즉석에서 뽑아내는 게 너무나 즐거웠거든요.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비가시적 재화가 점점 선명해 지더라고요. 조금만 써도 한도가 초과됐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 허들에 막혀 만들고 싶은 제품도 얼마 못 만들다보니 바로 흥미가 떨어졌어요.
3. 때마침 회사에서 클로드 API를 풀어줬어요. 그랬더니 금세 개발자분들이 클로드 CLI 사용법을 공유해 주더라고요. 냉큼 소화하려고 시도했죠. 처음에는 좀 소화가 안 됐어요. Antigravity랑 다르게 구현된 결과물을 보려면 좀 까다로웠거든요. 까다로웠던 이유는 회사 보안 때문이었어요. 구현한 결과물을 커밋도 하면 안 됐거든요. 일단 깃헙이 막혀있고, 클로드도 웹 검색은 막아뒀거든요.
4.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대안을 생각하게 됐고, Local 서버 기반으로 프록시를 운영하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됐어요. 물론, 완벽히 터득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옛날에 가비아에서 인턴하면서 배운 지식으로는 부족하거든요. 근데 저의 부족한 점을 클로드가 채워주더라고요. 마치, 친절한 멘토가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주는 거 같았죠.
5. 그러다보니 구조도 이해하게 됐고, 클로드를 Local에서 보안 위험없이 사용하는 방법도 알게 됐어요. 또한, 피그마 플러그인 툴에는 회사 내부 서버를 이용해 클로드 API를 붙여, 외부 서버로 데이터가 올라갈 위험없이 UX Writing Assistant를 구성했죠.
6. 생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수많은 도구들이 생기면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기간이 단축되고 있어요. 덕분에 결과물이 말 그대로 '뚝딱'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 파트원들도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했죠.
7. 저는 매번 결과물 보여주면서 "써 보세요. 일감이 줄어드는 느낌은 없지만 효율은 진짜 좋아져요."라고 반복하면서 영업했어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쓰기 시작했고, 이제야 모든 파트원들이 흥미를 갖고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보면 AI의 유용함으로 그들 모두를 설득하는데 2개월이 걸렸다고 할 수 있네요. 저는 AI가 UX Writing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 도 안 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거든요.
8. 파트원들 모두가 AI의 효율성에 환호하고 있을 때쯤, 역설적으로 저에게는 예상치 못한 위기감이 찾아왔어요. 저는 이제 조금 줄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제 생각이 사라지는 걸 경험하고 있거든요. 모든 자료가 AI를 거쳐요. 그러면 제가 생각이 없고, AI의 의견만 남아요. 분석도 마찬가지예요. AI가 잘해줄 거라는 생각에, 모든 자료를 믿어버리거든요.
9. 물론, AI가 정말 잘해줘요. 다만, 가끔 튀어버리는 결과물을 어떻게 옥죄냐에 대한 고민이 있는 거죠. 이 고민들 때문에 CLAUDE.md를 조졌고, Skill을 조졌고, Subagent를 조졌고, teamagent를 조졌고, 이제는 하네스 엔지니어링을 조지고 있어요.
10. AI와 관련된 것들을 조지면 조질수록 느껴지는 건, AI가 똑똑하면 좋은데, 제가 멍청하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거예요. 일종의 '매니페스토' 같은 건데, AI의 결과물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명서가 되는 거죠.
11. 그래서 그 사이에 발생하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 목표: 무엇을 할 것인가?
- 우선순위: 무엇부터 할 것인가?
- 절차: 어떻게 할 것인가?
- 재원: 예산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 기한: 언제까지 할 것인가?
12. 만약 이런 기준이 없다면?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AI의 늪에 빠지게 되는 거 같더라고요. 일의 효율을 따지기 위해 AI를 사용하는데, 되려 무의미한 결과를 만든다는 거, 어쩌면 헤이해졌다는 제 모습을 대변하는게 아닐까 하여, 요새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시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