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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Feb 26. 2021

Moo'tice

#49, 단 세 종류의 책이 진열된 서점

 순간 나는 그 소리로부터 여진구를 떠올렸다. 중후하고, 위엄 있으며 차분한 톤으로 전해지는 목소리, 나는 남자인데도 그 목소리에 빠져들어가 버릴 뻔했다. 그 목소리가 어땠냐면, '한창 욕탕 속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로 온몸을 풀고, 잠에 빠져들어버리는 순간, 갑자기 지진 소리가 들리더니, 내 몸이 담겨있던 물이 점차 사라지는데, 그 와중에 내 몸과 영혼이 함께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차'하는 순간에 나는 내 넋을 그 목소리에 빼앗겨 버렸다. 내가 한참 동안 서점 주인을 멍하니 쳐다보니 의문을 가지셨다. 주인은 게임 속 퀘스트 미션이 주어진 것처럼, 머리 위에 물음표를 떠올리고 계셨다. 나는 그게 예의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 번 더 무례하게 '안녕하세요. 한 번만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뻔했다. 서점 주인은 한 번 더 내게 말을 건넸다.


 "편안하게 둘러보세요."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찐따처럼 답했다.


 "ㄴ...네... 네.. 잘 보겠습니다."


 무엇을 잘 보겠다는 건지? 명확한 목적어도 없이 나는 말을 더듬으며 답을 했다. 서점 주인은 한 번 더 의문을 가진 것 같았지만, 나는 몸을 돌려 책장으로 향했다. 서점의 책장은 특별했다. 아니, 특이했다. 책은 분류가 돼 있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꽂혀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서점의 책은 단 세 종류로 꽉 차 있었다. 즉, 기존 서점처럼 다양한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테마 별로 몇 가지 정해진 책을 큐레이팅하여 서비스하는 서점이었다. 그런 서점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서점 주인에게 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번 더 보냈다.  나의 눈빛을 받은 서점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의 속마음을 알리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저 그런 서점 주인의 반응이 무언지 모를 재미로 다가와서, 서점 주인의 눈빛을 바라보며 씨-익하고 웃어줬다. 아마 서점 주인은 속으로 '또라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 서점 주인도 나와 같은 '또라이'였을 것이다.


 여튼 그 세 종류의 책 중에 아주 반가운 책을 발견했다. 곧 만나게 될 선배의 책이었다. 최근에 낸 책이었음에도, 금세 '핫'해져서 특별하게 큐레이팅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다. 선배의 책을 발견하고 나서, 오지랖을 떨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수줍음이 많은 외향형이 아니었다면 당당하게 말했을 것이다. 


 '오! 이 책 있잖아요. 이 책 저자요! 제가 지금 만나러 가는데, 혹시 아세요? 저기 저 옆에 지금 중국집 가면 이분이 있어요!! 혹시 궁금하지는 않으세요? 같이 가실래요? 저랑 친한 대학원 선배예요!! :D'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처음 보는 분들과 나누고 싶지만 쉽사리 되지 않는 성격이라 어쩔 수가 없다. 속으로는 들뜬 마음을, 겉으로는 감추며 차분하게 큐레이팅된 책들을 살펴봤다. 책들을 살펴보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서점은 잘 될 것이다. 무엇보다 책이 나타내는 내용을 적절하게 캐치해서 큐레이팅 해주고 있다. 그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사람들은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사전 구매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서점에서 선배의 책을 구매했을 것이다. 한껏 서점을 둘러보다가 나는, 시계의 침들과 눈을 마주쳤다. 꼭 메롱을 하는 형상이었는데, 나보고 '빨리 나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또한, '너 빨리 안 나가면 선배한테 한소리를 듣는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급히 뒤돌아서 문을 향했다. 그리고 장황한 문고리를 손으로 잡았다. 고개를 돌려 서점 주인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세요. 재밌게 봤습니다."






Ps. 그래도 선배보다 빨리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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