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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Apr 13. 2021

Moo'tice

#53, 인생 첫 장기 휴가

  그렇게 다음 날부터 나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글쓰기에 관심이 있던 터라 이력서는 휙~휙 써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일반적인 글쓰기, 학술적 글쓰기 그리고 이력서 글쓰기 모두가 방법이 달랐다. 그런 와중에 '나만의 글쓰기' 방법으로 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방향성이 달라 탈락하기 일쑤였다.


  그때 당시 나는 '시험 삼아 써본 거니까 괜찮아.'라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위로를 수백 번도 더 했다. 또한, 아직은 '끝나지 않은 보호 지역'에 한 발 걸쳐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나왔을 때도, 나는 여전히 서류 하나 통과하지 못한 '취업 낙제생'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명확한 노선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무슨 직무를 할지, 무슨 업무를 할지, 무슨 업계로 나아갈지, 모두 정해져 있지 않고, 회사의 이름만 보고 자소서를 적어내려갔다. 그렇다 보니 문제는 명확했다. '관심'이 없는 분야에 지원하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정확한 정보도 알 수 없었고,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안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니 누가 보더라도 탈락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글들'이었다.


  두 번째, 이력서에 명시할 어떠한 자격증도 없었다. 결국, 정량적인 평가에서 미리 탈락하여, 인사담당자가 자소서를 훑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경력이라고는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 경험과 10년가량 연구한 경험, 그리고 3년간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와 무관한 직무들에 지원을 했었기에 내 자소서는 읽히지도 못하고 탈락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 제주도로 한 달 동안 휴양을 떠났다. 30년 넘게 단 한 달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만의 휴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끝없이 날아오는 '탈락 서류' 대신에 나를 위한 여행용 합격 서류를 자체적으로 발급한 것이다. 나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그날, 나의 차를 끌고, 완도로 향하기로 했다. 그리고 완도에서 배에 차를 실어 제주도로 향하기로 계획했다.


  그렇게 떠나는 그 시간이 다가왔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차를 끌고 완도로 향했다. 완도로 향하는 와중에 떠오르는 일출은 세상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는데, 내가 봤던 그 무엇보다 이뻤다. 아니, 황홀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바다로 빠져들면 행복한 결론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만의 휴식시간을 취하고 싶은 욕구가, 그 충동을 억제했다.


  3시간 30분의 질주하면서 환상의 나라를 두세 번 겪은 뒤에, '완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산할 거라 생각했던 선착장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얼마 없을 거라 여겼던 차량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차를 배에 실어낼 수 없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매해뒀기에 나의 공간은 거대한 뱃고동과 한소끔 끌어 오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ps. 저는 역시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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