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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Mar 29. 2021

Moo'tice

#52, '공부는 나의 업(業)이 아니다'


  "뭘 또 사준다고 그러냐, 요새 조금 받은 돈이 있어, 너 정도는 사줄 수 있어. 일단 너 먹을 식사나 골라."


  나는 아까 골라놓았듯 '간짜장'을 선배에게 말했다. 간짜장을 고른 이유는 세트메뉴에 포함된 메뉴기 때문이다. 물론, 선배도 짜장이나 짬뽕 등 세트에 포함된 메뉴를 골라야 적용되는 가정이다. 하지만 역시나, 선배는 세트메뉴를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바로 다음 장을 넘긴다. 나의 생각을 읽어낸 듯 말이다. 그리곤 직원을 바로 소환했다.


  "간짜장 하나, 중국식 냉면 하나, 그리고 멘보샤, 칠리새우, 깐풍기 주세요."


  역시 선배는 화끈하다. 나는 식사 하나도 가격표 한 번 보고, 나의 수중에 있는 놓인 돈 한 번 보고 비교하며 주문하는데, 자신이 먹고 싶거나 필요한 요리를 거침없이 주문한다. 선배가 가진 착한 심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선배는 남에게 베풀 때 거리낌이 없다.


  선배는 우리 둘이 다 먹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주문을 욱여넣었다. 주문을 넣은 후 선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왜 보자 그런 거야? 무슨 고민인데? 대학원 간다는 소리 하려는 건 아니지? 절대 오지 마. 난 대학원 박사과정은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아.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말이야. 또한, 너는 공부보다 너의 재능을 살려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때? 사람 만나는 일 말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입도 한 번 뻥긋하지 않았는데, 선배는 내 고민을 미리 다 파악했다는 듯이 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정보 보따리 하나를 차고 온 듯이 나에게 많은 정보를 풀어냈다. 특히, 내가 고민하고 나왔던 부분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냈다. 선배는 이걸 다음과 같이 한 마디로 정리했다.


  "너는 공부하면 안 돼, 대신 그 재능을 살려서 사업을 해!"


  이 말을 듣고 한편으론 속이 쓰리고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 앞이 막막해졌지만 맞는 말이어서 반박하지 못했다. 나의 석사논문의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선배이기 때문에 나를 나보다 잘 알았다. 즉, 선배가 '나'를 향해하는 말과 선배가 '나'를 보는 시선이, 나의 객관적 지표였다. 그 결과 식사를 하기도 전에 내 생각과 고민은 단숨에 정리됐다.


  그 덕분인지 토할 거 같던 내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 또한 빠르게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게 내 삶에 있어 미래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 결론을 지은 순간, 선배는 한 마디를 더했다.


  "나같이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A선배, B선배, C선배 그리고 나, 이런 사람들은 다른 일은 1도 모르기 때문에 취'업', 사'업' 같은 업(業)이 들어가는 일을 하면 안 돼. 아니, 못해. 능력이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너는 말이야 공부보다는 다른 업(業)들이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잘하는 걸 찾아서 하도록 해. 3년 넘게 매주 본 너라면, 사람들과 시너지를 발휘해서 더 좋은 결론을 지을 수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공부라는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그만두고,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해!"


  선배의 이 조언을 듣고 결정했다. 앞서 만났던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는 한순간에 증발됐다. 그렇게 나는 나의 진로를 결정했다.




ps. 그렇게 나는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했다. 그 후, 연구계획서 대신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는 지금 현재와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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