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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Mar 09. 2021

Moo'tice

#51, 우리의 바운더리

선배는 선배 특유의 표정을 지니고 있다. 시크한 표정으로 냉소를 날리는 그런 표정 말이다. 하지만 친한 사람을 만나면 선배의 표정은 180도 변한다. 활짝 웃으며 따스하게 건네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힘이 된다. 그런 면에 있어서 선배의 '친한 사람 바운더리' 안에 속해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이 친한 바운더리 안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유난히도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다. 선배가 만든 연구실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다. 그 구성원 모두가 좋아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선배를 존경하는 나의 마음이 더 컸다. 그때의 소중한 연 덕분에 선배는 개고생을 했다.


나의 석사 논문 예비심사 기간 중, 선배 생일과 내 생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둘 다 생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의 예비 심사 논문 수정에 몰두했다. 몰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나의 모자란 능력 탓이었다. 선배는 그때도 손에 꼽는 연구자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근데 고작 1년 남짓 공부한 석사 꼬꼬마의 예비 심사 논문을 봐주느라 밤을 새운 것이다.


내가 몇 날 며칠을 수정하여 선배한테 보내주면, 선배는 첨삭하여 내게 보내주고, 또 작성하여 보내면, 선배는 첨삭하여 내게 보내주곤 했다. 그 시간은 일정치 않았는데, 새벽에 보내기도, 아침에 보내기도, 밤에 보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선배는 긴장하고, 뜬 눈으로 내가 수정한 원고를 보내주길 기다렸다. 내가 예상하기에 지도 교수님의 부탁이 있던 것 같다.


처음 지도 교수님께 예비 심사 논문 관련 정보를 전달했을 때, 많이 혼났다. 석사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글쓰기 실력 탓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글을 보고 대학교 1학년 생 수준이라고 이야기하셨다. 화를 내거나, 무시하거나 그런 발언은 아니었고, 걱정 어린 마음이 섞여있었다. 그 걱정 어린 마음을 담아 선배에게 부탁을 했을 것이고, 선배는 열정적으로 내 예비 심사 논문을 봐줬을 것이다.


선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그 찰나의 순간, 앞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마치 죽음에 다가선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곧 예와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고 바래진 감정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선배는 앉자마자 내게 말을 건넸다.


"야! 너 또 저렴한 거 주문하려 그랬지?"


선배는 역시 정확하다. 내 손가락을 본 것도 아닌데, 내가 메뉴명을 외친 것도 아닌데, 선배는 정확하게 알아챘다. 항상 선배를 만나면 미안한 마음에 저렴한 것을 찾는 내 습성을 알아서 그런지, 단번에 핵심을 찔렀다.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비평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보다. 그에 대한 답으로 나는 뻔뻔하게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이번에는 제가 사드려야죠!! 그래서 저렴한 거 먹으려고요!"





ps. 먹고사니즘에 빠져, 글쓰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해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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