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양보인가 의무인가
‘배려석’이라는 딜레마
_생각해 보기
며칠 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는 남성을 포스팅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무심히 휴대폰을 만지는 남성을 보니 그가 사회성 떨어지는 나쁜 영감탱이로 보였다. ‘왜 저 자리에?’ 그러나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은 남성뿐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닌 듯한 나이든 여성들도 너무 당연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배려석이잖아요. 지정석이 아니라. 배려 받을 사람이 오면 비켜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짧고 단순한 말이었지만, 퍽 충격적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임산부 배려석이 ‘지정석’이 아닌 ‘배려석’이라는 본질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지하철 배려석의 시작은 선의였다. 처음 이 좌석이 도입되던 2013년, 배려가 필요한 임산부에게 안정된 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목적이 분명했다. 특히 초기 임산부는 외형상 눈에 띄지 않아 일반 교통약자석에 앉기조차 눈치 보인다. 그러나 오랜 시간 서 있는 것은 척추와 골반에 무리를 주고, 자칫 유산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임산부 보호는 불가피했다.
문제는 이 보호의 방식이 ‘자리 확보’라는 물리적 방식으로 구현되면서 시작되었다. 지하철 한 칸에 두 자리. 열차 전체로 치면 적지 않은 수의 좌석이 임산부 전용 색인 분홍색으로 칠해졌다. 배려의 자리는 곧 ‘비워야 할 자리’로 인식되었고, 시민의 눈에는 곧 의무로 비쳤다. 그렇게 ‘배려석’은 점차 ‘지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자리는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배려’라는 사회적 합의에 기대고 있다. 누구나 앉을 수 있으며, 임산부가 탑승했을 때 양보해달라는 취지의 ‘권유석’이다. 실제로 쉽게 말하자면 ‘자리를 비워달라’는 메시지를 강조하지만, 법적 제재는 없다는 거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정석’과 ‘배려석’의 경계를 혼동한다. 남성이 앉아 있으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비난한다. 심지어 악의적 편집과 모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명백한 초과 행동이며, 배려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부끄럽게도 내가 그랬다.
임산부가 앉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유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보호조치다. 그렇기에 ‘배려석’이라는 명칭보다 ‘임산부 우선석’이라는 명칭이 더 현실을 반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 임산부 배려석의 현실은 다소 왜곡되어 있다.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에 실제 임산부가 앉아 있는 비율은 고작 0.7%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비임신 여성(61.8%), 그다음이 남성(19.9%)이었다. 즉, 임산부를 위한 자리라기보단 ‘여성 전용석’처럼 인식되고 있다는게 문제다.
그렇다고 남성이 앉는 것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아이의 말처럼, 누가 앉아 있어도 ‘배려석’일 뿐이며, 임산부가 나타났을 때 기꺼이 일어나 양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 과정에서 무언의 도덕적 판단을 가한다. ‘그 자리에 왜 앉아 있는가’라는 시선이 쏟아지고, 그 시선은 결국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자리를 다시 생각하는 중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 ‘배려석’이라는 명칭인가, 아니면 ‘배려의 문화’인가. 부산의 핑크 라이트 캠페인은 그 물음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임산부가 전용 비콘을 소지하고 좌석 근처에 오면 불빛이 켜지는 방식이다. 불필요한 시선도, 강요도 없다. 다만 조용한 신호로 주변에 알릴 뿐이다.
배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 없는 강제는 때로 폭력이 된다. ‘왜 안 비켜줬냐’는 비난보다, ‘기꺼이 비켜줄게’라는 문화가 자리 잡는 사회. 그것이 진짜 배려 사회일 것이다.
작은 아이의 말처럼, 우리는 가끔 헷갈린다. 배려석과 지정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남을 꾸짖고 비난한다. 그 자리가 비어 있는지, 누가 앉아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가의 마음의 문제다.
임산부의 삶을 살아본 나로서 정말 부탁드린다.
“배려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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