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산다는 건...
쌍화차에 견과류가 둥둥 떠 있다.
호두, 잣, 대추, 땅콩, 호박씨, 해바라기씨, 깨가 너나없이 부풀어 오른다. 가운데엔 노른자가 둥그렇게 떠 번들거린다.
작은 찻잔 안에 부담스러운 것들이 가득 담겼다.
삶의 결이 뜨겁게 끓고 있는 쌍화차 한 잔! 토스트를 파는 60 넘은 사장님은 오늘 한사코 나를 세워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붙잡는다.
여러 메뉴 중 가장 인기가 좋다는 쌍화차를 내밀며 묻는다.
"그 모임, 어떤 사람들이 나와요?"
조심스러운 말투, 그러나 눈빛은 궁금함이 가득하다.
매달 넷째 주 토요일, 같은 시각, 같은 얼굴로 와서 토스트를 찾아가는 나. 사장님은 내가 아니라 그 너머를 알고 싶은 거다.
한 달에 한 번 문학 수업을 한다. 한국소설을 읽고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 다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오시겠네요.”
뜨거운 쌍화차도 쌍화차지만 그 말이 목에 턱 걸린다. 견과류처럼, 자꾸 씹히고 곱씹힌다.
먹고 살만하다는 건 과연 어떤 상태일까.
누군가는 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병원비를, 또 누군가는 밀려오는 월세를 두려워한다.
반면, 어떤 이는 쇼핑을 하며 명품을 고르고, 문화와 여가를 즐기고 또는 해외로 떠난다. 다 다른 무게와 형상으로 이루어지는 먹고 사는 일이다.
나는 익지 않은 노른자를 두고 무척 고민한다. 차반 견과류 반인 쌍화차도 고민스럽다. 큰손님이기에 유독 견과류를 많이 넣었다고 힘 주어 말씀 하신다.이걸 어떻게 먹나.
사장님의 마음이 담긴 정성이라는 걸 알기에 남길 수 없어 꾸역꾸역 씹어 삼킨다. 계란의 비릿함 견과류 부서지는 식감이 썩 반갑지 않다. 다만 우리 사회에는 이 쌍화차 한잔의 여유도 없어 쉽게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우리가 일상으로 누리는 문화와 여가는 사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문화와 예술은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그 이후 삶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또 다른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싫고 불편한 것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 마시는 힘. 터진 노른자처럼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상대가 불편해 할까봐 끝까지 삼키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쌍화차를 꾸역 꾸역 먹으며 사장님의 질문에 답을 생각한다.
먹고 산다는 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