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 할아버지의 부고

_나눔의 실천

by 박시윤

*샤프 할아버지 정동문 어르신의 부고를 전합니다.

초저녁, 낯선 번호가 울렸다. 생전 처음 듣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박시윤 선생님이신가요?" 내가 의아해하자 "혹시 정동문 어르신 아시지요?” 한다. 나는 “안강... 샤프 어르신 말씀이신가요?” 했다. “아무에게도 연락을 드리지 않았는데 선생님께는 연락을 드려야 될 거 같았어요. 아버지... 돌아가셨어요.” 순간, 말끝이 무거워졌다.

일주일 전이었다. 옥산서원 답사 차 안강에 갔을 때, 어르신 댁에 들렀다. 좀처럼 잠기지 않던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편찮으신 건 아닐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정동문 어르신은 나눔을 삶으로 사신 분이다.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멀게는 필리핀과 캄보디아, 네팔까지. 어린이들에게 직접 만든 우드 샤프를 나누어주셨다. 샤프에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 새겨, 아이들 손에 딱 맞는 크기로 다듬었다.

"이건 떡갈나무예요." "이건 벚나무고요." "이건 느티나무예요."

내가 어르신 댁에 갈 때면, 어르신은 내가 보는데서 직접 나무를 깎고 이름을 새겨 주셨다. 목재를 쥐고 깎는 손끝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아이처럼 빛나는 눈동자엔 기쁨이 가득했다.

대가를 바란 적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본인에게 주어지는 기초수급비를 쪼개 목재를 사고, 다듬고, 새기고, 완성했다.

어르신의 선행이 세간에 알려지자 포항제철에서 기계를 제작해 주었고, 어느새 나눔은 하나의 길이 되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어르신은 홀로 기쁘게 걸으신 거다.

따님은 아버지가 쓰던 휴대폰을 살피다, 나와 나눈 메시지를 보았다고 했다. “아버지 부고를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생님께는… 꼭 전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동안 우리 아버지께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몹시 부끄러웠다. 어르신과 내가 주고받았던 인연이, 그분의 삶 안에서는 결코 짧지 않았음을 느낀다.

어르신이 살던 집 앞, 키 큰 뽕나무. 올해도 그 나무엔 어김없이 진실한 오디가 맺히겠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샤프를 꺼낸다. 나뭇결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그 위에 새겨진 이름이 나를 부른다. 그건 단지 내 이름이 아니라, 어르신의 손끝에서 전해온 선함의 흔적이었다. 어르신 없이 샤프를 꺼내지만, 그분의 숨결은 여전히 살아 있다. 말없이 깊게 세상에 이름을 새긴 참 어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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