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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Sep 15. 2021

선녀와 나무꾼

잘 알려진 이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곳은 고요해진 분만실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직후였지요. 옆에 누운 신생아의 온기가 팔뚝에 닿았습니다. 침대 옆에 놓인 짐가방에는 병원 복도에서 놀고 있는 첫째 아이의 놀잇감과 도시락이 들어있었어요. 제 몸에 딸린 두 아이의 존재감이 온 몸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선녀는 나무꾼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 사실은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두 아이를 안은 채, 하늘로 올라갔습니다.’라는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선녀 이야기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로 끝을 맺습니다. 자명하게도 그녀가 나무꾼을 떠난 것이지요. 견우직녀처럼 훗날을 기약하지도, I’ll be back 이라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선녀의 마음입니다.

 

슬픈 이별이 아니었냐고 묻는다면,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날개옷은 선녀가 선녀임을 스스로 밝힐 유일한 길이며 처녀시절 입던 옷입니다. 아이 둘을 낳고도 나무꾼이 느닷없이 내어준 옷이 잘 맞았습니다. 선녀는 날개옷으로 옛 신분을 회복할 날을 항시 벼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고된 농사일에 군살 붙을 틈이 없지 않았겠느냐 묻는다면, 이번에는 ‘ 아이를 안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를 안을 , 다리는 삼각대 모양이 되고 골반과 척추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집니다. 무게가 다른  아이를 안아 올린다면, 이러한 역학적 조정이  차례 더해집니다. 순간, 폭발적 근력도 필요합니다. 날개옷이라 지상의 무게와 무관하지 않을까 상상해   있겠습니다만, 사슴도 ‘아이 셋을 낳은 후에 날개옷을 돌려주라.’ 당부했습니다. 날개옷도 중력의 법칙에 해당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선녀는   근육 부들거리며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 것입니다. 처녀시절 몸매에  아이를 안고 버틸 근력이라니! 선녀는 나무꾼이 잠든 밤이면 대들보에 매달려 등근육을 키우고, 가마솥 들어 올려 삼두근을 단련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사슴의 계략으로부터 선녀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이별에 황망했을 나무꾼은 멀어지는 선녀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보지 못했겠지요. 선녀는 복수 대신 침묵으로 참담했던 이 세상의 시간을 덮습니다.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따라갔다느니 하는 부분은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 대목에 선녀는 없지 않습니까? 나무꾼을 사랑한 적이 없는 선녀의 이야기는 이미 끝난 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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