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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l 14. 2022

글 불

책모임에 대해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시작되었죠. 나는 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끌려가고 휘둘리고 소용되다 팽게쳐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습니다. 나를 함부로 가져다 쓴 사람들을 탓하고 큰 소리로 울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눈 앞에 ‘반짝’ 나타났다고 할까요. 벌떡 일어나 나갔습니다.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책 모임이 시작하는 자리였지요. 처음보는 사람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우리 모임의 이름을 수줍게 혹은 열성적으로 정하고, 첫 책을 정했어요. 모임의 이름은 ‘쉼표', 첫 책은 조지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였습니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올해부터 맡긴,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일어난, 아프게 하는 관계로부터 눈을 돌린, 성취를 향한 길에 숨이 가빴던 사람들이 샴페인 꼭지처럼 제 자리에서 '퐁!' 튀어나와 착지한 자리라고 할까요. 개개인의 서사를 알게 된 건 아주 나중의 이야기지만, 그날 우리에게는 열망과 우연과 필연이 묻어 있었을 겁니다.


또 훌쩍 떠났습니다. 코로나에 8개월 간 등교도 외출도 하지 못한 내 아이의 눈빛은 공허했고 동시에 어찌 돋았는지 모를 날 같은 것이 서려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를 부르는 눈은 사람을 갈급하다 꽉 쥐려고 생채기를 낼 것만 같았습니다. 가위손처럼요. 아이 마음을 채워줄 수도 없고 아이의 바램에 마냥 다치고 있을 그릇도 못된 저는 등교할 수 있는 시골 학교를 찾았습니다. 5일 후, 나고 자란 서울에서 제일 먼 제주로 왔지요.


책으로 만날 사람과 할 일이 정해지면 낯선 곳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온라인 세계를 뒤져 댓글을 달고, 신청서를 보내고, 한 개, 두 개, 세 개……다섯 개 째의 책모임에 들어갔습니다. 책 모임인 줄 알았는데 글쓰기 모임이었던 적도 있고, 책 값의 세 배가 넘는 참가비를 낸 적도 있고, 입 벙긋 하기가 불편한 적도 있고, 스타 유튜버를 만난 덕질 책모임도 있었습니다. 설렘과 체념의 기웃거림이 지루하던 중 오래 잠든 ‘쉼표’ 친구들 톡방에 말풍선을 띄웠습니다. ‘어제는 OOO 작가를 만났어.’


마주  말풍선들이 나도 알고 있는 작가라고, 또는 20대의 방황을 불러내 공명 해주었어요. 마음이 기쁘고 밝아졌습니다. 은은히 타오르는 모닥불의 붉은 온기를   처럼요. 모닥불 너머 발게진 얼굴로 나를 보아주는 사람을   처럼요. 모닥불! 우리의  읽기는 모닥불이었을거에요. 묵직한 책도, 유명한 작가도, 카페 인테리어도, 자기 말을 토해내는 핑계도 아니었을 겁니다.  권의 책이 우리 가운데 장작으로 놓여 지펴지는 동안  이야기가 비추이는 사람을 보고 들었습니다.  빛이 밝혀주는  말고는 서로를  이상   없지만 돌아보라거나    가까이 와보라거나 채근하지 않습니다. 다음 , 다음 책으로 열화를 반복했지요. 붉었던 조각은 면적이 되고, 면적은 순서를 갖고,  사람의 서사를 들려줍니다. 이제는 서로 만나지 않을 때에도,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모닥불 너머에 마주 앉을 사람이 리워집니다.


아, 나는 책을 찾은 게 아니라 불가에 같이 앉아줄 사람을 찾은 거로군요. 자기가 읽은 책 얘기를 낙수처럼 쏟아내는, 네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핀조명을 쏘아대는, 읽은 책이 보루꾸라도 되는 냥 성벽을 쌓아올리는, 읽기가 벼슬이 되고 권위가 되는 자리 말고 글의 평등함을 알고 나누는 사람들을 원했던 겁니다.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에요. 내가 찾아갈 곳을 알게 되어서, 마주 앉을 사람들이 떠올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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