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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l 05. 2024

05 서운한 계란

김밥이란 무엇인가

언어문화, 민족언어, 언어정서 같은 말이 좋다. 그 언어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사전과 문법이 닿는 경계 밖으로 번져나간 일들을 가리킨다. 진지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말 ‘껴’ 한 글자가 그리는 무드를 상상한다. 민망하거나 낭패이거나 거절하거나 배제하거나 연대하는 모든 곳에 ‘낄’ 수 있다. 이 언어 민족이 똥에 친숙하고 남 보이는 옷가지에 민감하고 매운 맛을 즐기며 무리와 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껴. (아, 이 바지 자꾸 똥꼬 껴.)

껴. (야, 그 옷 입지 마. 흉해.)

껴. (고춧가루 껴. 지금 안 먹을래.)

껴. (아휴! 좁아. 넌 좀 저리가.)

껴. (혼자 있지 말고 너도 이리 와.)     

첫 메뉴가 ‘기본 김밥’인 집에서 기본 김밥을 물었는데 ‘야채 김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네, 그럼 기본 김밥 한 줄이요.”

주문을 했는데 버젓이 계란이 껴 있다.     

김밥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지나? 메뉴판 아랫줄로 갈수록 햄김밥, 참치김밥, 맛살김밥, 진미채김밥, 치즈김밥처럼 혀에 착착 붙는 재료들을 내세운 이름들이 적혔다. 구하기 귀한 단백질을 이름으로 삼았나 싶은데 계란은 그 이름이 되지 못했다. 덜 비싸서 그런가 하면 계란보다 싼 ‘어묵김밥’도 있고, 야채여도 주인공이 된 ‘우엉김밥’과 ‘샐러드 김밥’도 있다.      

어쩌다 계란은 김밥마다 들어가면서 김밥의 이름에선 탈락되었을까? 늘 김밥과 함께라서 사람들이 존재를 잊은 걸까? 메뉴에 ‘계란김밥’이 붙은 집을 만나면 계란이 어쩌고 있나 궁금해 사 먹어보는데 더더욱 아리송하다. 기본인 김밥에게 가서 더욱 기본이 되느라 샛노랗게 자리매김하고도 불리우지 못한 계란이 선명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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