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기억
민지네 김밥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서 다른 김밥집도 보게 되었다.
‘김가네 김밥’
눈길을 오래 잡아둔 것은 우리집 문패 같은 친숙한 상호 아닌 그 아래, 말간 유리창 말고 그 안에, 바짝 붙어 김밥을 마는 한 아줌마였다. 부모 밥 먹고 학교만 다니던 고등학생이 사람 먹이는 일의 수고를 알 턱이 없지만, 김밥은 달랐다. 툭 하면 내 맘도 모르고 내 말도 안 들어주고 손부터 올라가던 우리 엄마가 실은 나를 아낀다고 꾹꾹 말아 내어놓는 고백이라 그랬다. 그러지 않고서는 오직 나만 싸 갈 도시락을 새벽부터 일어나 만들 리가 없잖은가. 종류종류 늘어놓은 빛깔과 갈래갈래 썰어진 채소와 절여지고 볶아진 가지가지 요리법에 눈이 닿으면 엄마의 말이 읽혔다. 짐작이었을지언정, 사랑한다고, 너는 내 새끼라고. 새벽에 엄마가 싸 주는 김밥은 화해이고 기쁨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밀하고 강력한 엄마의 실루엣이 거리로 나와서 유리창 안에 들어 있다. 여자는 행인들을 마주하는 자리에 섰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부엌에서 바로 만 김밥을 받아먹던 기억을 불러내겠다는 브랜드의 기획이었을까. 유리창에 ‘즉석김밥’이라고 적혀 있으니, 끼니마다 차려준 음식을 먹던 일이 세상에 나오면 ‘즉석’이라 불리는 줄 그때 안다. 여자는 딱히 창 밖을 보지 않는다. 그럼 훤한 유리창은 누구의 것이지? 김밥 마는 어깨 너머로 홀과 주방이 있고 안쪽 주방이 시작되는 경계에 사령관 같은 실루엣이 보인다. 그는 홀도 보고, 주방도 보고, 김밥 마는 여자의 등도 본다. 그러니 여자 사람은 등이 보여지는 자리, 들여다 보여지는 자리, 먼저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 않는 자리에 있다.
남의 집 부엌을 길가에 내어놓고 사람을 유리창 안에 세운 가게가 버스 정류장 앞이면 기다리는 버스가 올 때까지 몸을 돌려 서는 일에 집중을 했다. 혹여나 쳐다보는 눈이 마주칠까 걱정이 됐다. 상대가 마주 사람을 보지 않으면 함께 시선을 피하는 내면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에게 의미였던 노동이 유리창 안에 들어간 걸 보는 건 그만큼 낯설고 어색했다.
스무 살이 되어 동네를 벗어나 시내를 쏘다니면서 유리창 안에는 국밥도 푸고 전도 부치고 수타도 치고 미싱도 돌리는 여타의 수많은 노동이 있음을 보아서 알게 되었고, 차츰 유리창 안에 사람이 있는 가게문을 열고 쑥 들어가는 일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