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나는 타인의 이야기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 내 얘기도 한번 써볼까? 그렇게 시작된 브런치 연재는 내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했다.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뭔가를 꾸준히 해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까지.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고 반응한다는 것도 정말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서 지나온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내 삶에게 '잘하고 있다'며 토닥거려 주었다.
자기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서로의 삶이 다르니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글을 쓰면서 바램은 '의미'가 아닌 '느낌'이었다. 내 글을 읽는 잠깐이라도 "아.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 하는 마음이 들기 바랐다. 글을 쓰고 브런치에 올리기 전 항상 아내와 딸에게 먼저 내밀었다. 감수를 부탁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내심은 아내와 딸에게 내 진심을 전하는 것이었다. 기대 이상의 리액션으로 항상 날 웃게 만들던 딸과 글을 읽고 나서 씨익 웃던 아내의 얼굴이 얼마나 예쁘던지.
'어른'이 되고 싶다.
오래전부터 아내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주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어른'이 되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실천하려 부단히 노력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나 스스로 성장과정에서 훈습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안타깝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혼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정신분석과 치료의 도움을 받았다. 내면에 똬리 튼 적개심의 뿌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던 정서적 패턴도 자각하게 되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각되는 만큼 더디게 성장하고 있다.
바삭하게 살고 싶다.
주위에서 적개심 없이 발랑 발랑한 후배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구김 없이 밝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항상 즐겁다. 주거니 받거니가 되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끈적이지 않아 바삭하다. 밝은 후배들은 대체로 똑똑하다. 단순히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꼬인 게 없으니 상황을 바로 보는 안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잘 이해하고 있어 가진 달란트를 십분 발휘하며 살아간다.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위하는 마음을 담고 싶다.
오늘도 사소한 일상이 내 마음을 꽉 채운다. "식당에 들어서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전화드렸어요."하고 안부를 묻는 아들의 한마디, "별일 없지?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무심한 듯 안부를 묻고 전하는 오랜 친구의 한마디, 별스럽지 않은 이 한마디에서 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문득 별스럽지 않은 안부를 묻곤 한다. 물론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덤으로 얹는다. 나는 마음이 헛헛할 때면 김경미 시인의 시집을 손에 잡는다. 뭐랄까. 그녀의 시는 사소하고 남루해 보이는 것조차 큰 의미가 되도록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소개하며 이번 시리즈를 마치고자 한다.
“애쓰며 사는 것,
그게 사람이 인생을 대하는 최고의 예의고,
애쓴 만큼 이뤄주는 것,
그게 인생이 사람을 대하는 최고의 예의,
그 최고의 예의는 어두운 노력과 시련 속에서 더 잘 드러나는 것.”
/ 김경미 시인, '아침 가로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