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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 인간 Nov 16. 2024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열세 번째 이야기: 실상과 허상 사이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잊힌 지 오래다. 그런 곳을 찾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전직이나 이직이 별스러운 사람의 사연이 아니라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직이나 전직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변화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성장을 일궈낸다. 또 누군가는 안정을 추구하며 조화롭게 소중한 일상을 지켜낸다. 그저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다할 뿐이다. 


나는 여태껏 회사를 네 번 옮겼다. 지금처럼 단기 알바가 흔치 않던 대학원 시절까지 고려하면 더 많다. 지금 다니는 곳에서도 부서를 몇 번 옮겼다. 운 좋게도 주위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을 많이 받았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변화와 도전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아내의 충고가 없었다면 내 이력서는 벌써 몇 줄 더 추가되어 페이지를 넘겼을 것이다. 참 얄궂은 게 세상 살이다. 여태껏 자유로운 선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내가 팀을 옮기거나 회사를 그만두려 하는 후배들을 마주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다. 오죽하면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하겠는가? 오랫동안 팀을 운영하면서 팀원들이 들고 날 때는 매번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인사이동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후배들과 면담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떠나려는 사람은 대체로 남겨질 사람들을 다시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좋은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한마디로 지금 여기에 아쉬운 게 없다는 의미다. 비로소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인사 문제로 고민을 들고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말이 있다. '왜 옮기려 하는지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면담을 해보면 그 후배가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많은 고민을 한 후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후배의 생각을 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이 불만스러워 어떻게든 환경을 바꿔보려 퇴사를 선택하는 후배를 마주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만스러운 환경이 내 문제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새로운 곳에서도 불만이 생길 텐데 그때마다 이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이직한 곳에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때는 불만이 내가 가진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데서 오는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을 몰랐다. 내가 만든 허상을 타인이 만든 실상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오래전 또다시 이직의 유혹을 느낄 때 즈음 아내의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어딜 가든 네 인정욕구를 채워줄 곳은 없어. 그건 누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채워야 하는 거니까."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결핍이 건드려지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정신치료를 받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수도 없이 했다. 일상에서 직면하는 여러 괴로운 문제를 들고 상담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마음은 항상 같다. 괴로운 내 마음을 공감하고 내 편을 들어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료자의 대답은 항상 똑같다. "아 글쎄, 그건 그 사람 문제고. 당신은 당신 문제를 봐야지." 내 문제를 회피하고 감추기 위해 타인을 탓하는 나 자신의 미련함에 돌 깨기 작업을 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내가 맡고 있는 팀을 거쳐간 후배들을 비교적 오랫동안 지켜보는 편이다.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승승장구하는 후배들도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이직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후배들도 있다. 또 자기 문제를 이해하게 되어 위기의 순간에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후배들도 있다. 그들 모두 선택은 한순간이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천차만별인 것을 보게 된다. 모두 훌륭한 역량을 갖춘 후배들인데 무엇이 그들에게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었을까? 선택의 과정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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