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
잘하는 거 하나 없는 일생이다.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굳이 쥐어짜내 하나 꼽자면, 하나 있다.
운 좋게 현대에 태어나 목숨을 연명하고 주제에 먹는 거 하나 잘한다.
위문협착증. 식도에서 위로 가는 길이 막혀 현대 의학이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100일도 채우지 못하고 죽었을 운명이었다. 위가 남들에 비해 크다는 의사의 소견을 엄마를 통해 들었다. 뭐든 꿀떡꿀떡 잘 먹는다.
아, 또. 웃는 걸 잘한다.
잘하는 거라곤 겨우 먹는 것과 웃는 것.
아르바이트 면접 당시 ‘본인의 단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눈치가 없다.’라고 말했던 일화가 있다. 이 정도로 눈치 없이 살고 있다.
눈치가 없어 적당히 먹어야 될 때와 웃지 말아야 할 때도 가려내지 못한다.
그 덕에 이젠 어딜 가도 제법 어리지 않은 나이임에도, 사회생활에 나름 경력이 있음에도 만년 신입 같다.
다이소, 맥도날드, 이틀하고 도망쳤던 교보문고, 2개월 하면서 컵을 깨먹었던 할리스, 학교 근로 학생 알바까지.
주얼리 회사, 카드 단말기 회사, 소프트웨어 납품회사, 얼마 전에 취업한 회사.
나름 적지 않은 사회생활 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경력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약 10년은 사회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내지 못하니 금치산자인가.
그저 신입의 변명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첫 회사이자 유난히 강렬했던 그 곳에 입사일은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종로에 발을 딛게 된 건 그러니까, 스무 다섯 살이었다.
돌이켜보면 기이할 정도로 첫인상이 좋았다.
사무실이 넓거나 깔끔한 것도, 그렇다고 응대해준 직원이 친절했던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대표 방과 연결된 회의실에 벽 안까지 스며든 담배 냄새가 지독했는데도 말이다.
대기하고 있는데, 커피를 놓고 간 직원이 입고 있던 하얀색 긴 치마와 갈색모가 기억에 남았다. 입사 후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용모의 직원은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모든 기억이 조작된 건 아닐까.
담배 냄새가 찌든 회의실, 껄렁껄렁한 대표의 태도,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사무실. 이것들이 좋았을 리가 없다.
“뽑으려고 불렀다.”
대표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당장 출근하길 바라던 그에게 알바 한다는 거짓말을 해 출근일을 조금 미뤘었다.
다른 회사와 재려고 했던 건지 괜히 더 쉬고 출근하려고 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종로에 있는 주얼리 회사이니 이하 J컴퍼니라 부르겠다.
J컴퍼니는 퇴직금 포함된 연봉, 최저시급이나 다름없는 월급, 연차 없음. 야근이 당연하고 수당은 결코 없는. 이런 조건의 회사에 왜 다녔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 땐 그냥 다녔다.
그 당시엔 7시에 퇴근하는 회사들이 꽤 있었다. 물론 지금도 있다. 문제는 야근까지 밥 먹듯이 했다는 거다. 정시 퇴근이라는 걸 지켜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 여자 애들의 노동력으로 운영하던 회사였다. 그 땐 몰랐다.
그저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월급이 좋아 다녔다. 친한 동료와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던 게 좋았다. 회사를 다니는 자체만으로 다행이었다.
종로에서의 1년 6개월의 여정.
사장님의 쌍욕을 옆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듣게 된 회식.
3개월 같이 일한 직원이 물려준 회사의 막장 썰들.
친한 동료는 창피해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던 일들.
창피한지 모르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던 나는 정말 눈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