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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l 13. 2021

그러고보니 지금도 여름이군요

그러고보니 지금도 여름이군요.

2021년 7월 6일

여름.


지금은 7월 초. 아직 진정한 여름은 오지 않았고. 올해 여름은 내내 이 정도 더위일거지? 하고 간을 보는 기간이다. 

여름의 절정에는 지금과는 비교 불가한 온도와 습도가 펼쳐지겠지. 과연 얼마나 대단한 무더위일지를 생각하면 쉽사리 마음이 편해지질 않는다. 그 여름을 또 어떻게 이겨내라는 말인지. 


그런 긴장 상태여서인지 6월부터 7월까지 전체적인 생활 리듬이 흐트러졌다. 기상과 취침 시간이 불규칙해졌고 조급한 마음에 다 읽지도 못할 책들만 구입했다(책을 사는 것도 독서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둔 것은 참 잘한 일이다). '다다다' 관련해서도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시작하지 못했다. 

여름 너무 더워. 습해. 배탈 자주 나.

'다다다'를 그리면서 내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역시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이다(무슨 만화에 가치씩이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뭐래도 나는 지금 굉장히 진지하니까). 콘텐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가치 정립이 되지 않으니 각 에피소드가 구심점 없이 분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7월이 되기 전에 가치를 만들어보기로 했으나 고민만 이어질 뿐 선뜻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여름 때문에 많이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삶은 살만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힘든 일상 속에 활력을 전해 주기' '공감과 위로를 전해주기' '삶의 불가해성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쳐주기' '그냥 무조건 귀엽고 귀엽기' 같은 것들을 후보로 떠올려 보았으나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고 이런 것이 과연 가치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다다' 에피소드 하나를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10초가 되지 않을텐데 그 안에서 독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 가치가 아니라 감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스쳤다가 이내 잊혀지는 통증, 달콤함, 짜릿함과 같은 감각. 이것을 가치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가 되어 가리키는 것. 그것이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발짝 물러나 좀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며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찾아보고자 했다. 콘텐츠가 전달하는 가치가 아닌, 콘텐츠를 만든다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일까.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보니 의외로 명쾌한 답이 나왔다.


'작은 시도들이 꾸준히 모이면 여전히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제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을만큼 나이를 먹다보니 내가 믿어왔던 삶의 기준이 사회에서 잘 사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정직, 성실, 배려, 노력이 어려서부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삶의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몇 가지 삶의 기술이 훨씬 중요해보인다. 거기에서 오는 혼란스러움과 허탈감이 있다. 더 아픈 것은 나에게는 혼란스러움과 허탈감에서 그치지만 후배 세대들에게는 절망감, 열패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된다라고 사회 혹은 기성세대가 가르쳐주었던 기준들은 이제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고해서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철학은 없고 요령만 남은 시대다.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작은 시도들이 꾸준히 모이면 여전히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다' 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름 증명해보이고 싶다는 내 욕심이다(이게 무슨 가치냐고 물어보면 글쎄 딱 잘라서 말하진 못하겠다. 근데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다들 아시지 않나요. 그겁니다). 

희망, 꿈, 선한 영향력을 전하겠다 이런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라고 사람들이 인식해주었으면 한다. 이 부분에서 가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그러니까 한 문장으로 말하면 제대로 그림이나 스토리텔링을 배운 적도 없고 재능도 없지만 어린시절 그림을 좋아하던 어렴풋한 기억의 편린들을 놓지 않고 시도를 계속 이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쭉 지켜봤더니 기특하게도 조금씩 성장을 하고 있고 그 결과를 나도 같이 기대하고 싶다 라는 가치다. 아무튼 무지하게 긴 가치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들을 공유하는 것이고 사람들도 그 과정을 함께 봐줬으면 한다.  


당연히 '다다다'가 엄청난 인기 만화가 되거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콘텐츠를 아는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콘텐츠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장 무더운 여름날을 대비하는 지금도 이미 여름인 것을 깨닫는 것처럼. 그리고 보여주는 것까지가 내 몫이고 그 이후에 펼쳐질 이야기들은 당연히 나의 몫이 아니다.


읽고 있는 책 : 나 혼자만 레벨업(추공 작),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박상), 시드니(무라카미 하루키)

듣고 있는 음악 : 크리스 가르노, 건즈앤로지즈, 오마이걸의 노래들

마시고 있는 것 : 트레비 탄산수, 스타벅스 자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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