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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Aug 12. 2021

예술이야

예술이야


2021. 8.5.

여름. 


요즘은 24시간이 더워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아 출근한다. 텀블러는 언젠가 폴바셋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여 보고자 구입했다. 검정색을 사고 싶었는데 재고는 빨간색 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빨간색을 구입했다. 걷다가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마스크를 내리고 한모금씩 목을 축이는데 그런대로 기운이 난다. 곤란한 점은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왠지 멋쩍고 어색하다는 것이다. 마스크 때문에 편하게 마시지도 못하면서 조금 유난을 떠는 느낌이랄까. 다행인 것은 텀블러가 강렬한 빨간색이다 보니 멀리서보면 작은 휴대용 소화기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안심이 된다. 작은 소화기 정도는 누구나 들고 다니니까.


소화기입니다만?


예전보다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올림픽이기에 중요한 경기들은 챙겨보고 있다. 올림픽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콘텐츠 중 으뜸은 단연 사진이라고 생각하는데 2021년에 열리는 2020년(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도쿄올림픽에서도 역시나 좋은 사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영상을 보는 것보다 사진을 보는 것이 즐겁다. 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는 한 장의 사진도 있다. 이런 사진들은 예술작품의 자격을 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당연히 그런 자격 같은 건 없다). 예술에 대한 각자의 기준들이 있겠지만 나는 전후, 상하, 안팎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것이 예술이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기준을 갖고 있다(감히 명확한 기준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겉을 보여주지만 안을 상상하게 만들고 지금을 말하지만 과거를 체감시키는 것. 기법이나 기술이 복잡하거나 색채, 외형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맞닥뜨린 순간 생겨난 복잡한 감정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모나리자'는 보러가기만 해도 복잡한 감정이 든다. 

그리고 올림픽 시합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사진에서는 여지없이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어떤 사진을 보든 그 뒤에 4년의 시간이 함께 비춰보인다. 성공은 성공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사진 속 선수의 모습은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며 그 감상의 끝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 올림픽이 끝나면 패션잡지들은 선수들의 패션 화보를 싣곤 하는데 이런 사진들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감상의 끝이 나를 향해 있지 않다. 멋지지만 예술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뒤집어서 말하면 예술은 비록 그것이 목표가 아닐지라도 겉모습이 아닌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든 나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살면서 한 번쯤은 예술이 유용한 때가 있다. 예술에 의해 누구나 한 번은 구원 받을 수 있다. 예술이 적시타를 칠 때가 있다(아쉽지만 타율은 매우 낮다. 예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름을 예술이로 할까.

'다다다'에 등장하는 이 캐릭터는 예술을 좋아한다. 지난 6월, 캐릭터 컷을 그리면서 캐릭터별 설정도 함께 구상했는데 이 친구는 정말 금방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허영이라고 조롱해도 예술을 애써 향유하려는 캐릭터가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바로 직전 에피소드에서 신기하게도 이 친구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를 언급하기도 했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터프한 일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무릎을 세우고 앉아 시집을 읽고 거리 예술가의 그림에 가벼운 지갑을 열거나 거리 음악가의 연주에 발걸음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내 어렴풋한 예술에 대한 기준처럼. 이런 설정이다보니 아무래도 패션이나 악세서리를 좀 더 감각있게 연출하고 싶어서 다른 캐릭터들보다 걸치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한다.

곤란한 건 이 캐릭터의 예술에 대한 모든 것(지식, 교양, 열정 등)이 창작자인 나보다도 높다는 설정이다(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는 설정이다). 이 친구를 제대로 표현하려면 부지런히 공부해서 얼추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척하는 건 티가 나니까. 아직 메타버스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는데 또 해야할 게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술 공부도 해야 한다(야호! 책 사야지). 


다시 올림픽 이야기. 지난 5년간 기술, 사람, 인식, 정치, 가치관 등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2020 도쿄올림픽을 보며 실감한다. 내 기억에 어떤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이런 도약과 낙차를 보여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이슈들은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섬뜩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4년마다 개최하는 올림픽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그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에 집중하면 되지' 하고 적당히 눙치며 넘어가고 싶지만 과거에 대한 맥락 파악이나 미래에 대한 상상도 없이 현재만 수제비처럼 뚝 떼어 과몰입하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삶에 서사는 없고 밈(meme)만 가득하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멀리 내다보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차라리 이 에너지와 시간을 현재에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무언가에 투자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든다. 

하지만 매덕스가 상대투수라도 일단 타석에 들어서면 마음 속에서는 우주 끝까지 뻗어가는 아름다운 공의 궤적을 떠올리는 거다. 사실 미래는 언제나 불투명하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거리 찾지말고 하던 걸 해야한다. 옳은 방향으로 계속 시도하고 변화해야 한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2024년 올림픽은 내가 늘 사랑하는 파리에서 직관하는 낭만적인 상상도 해보며. 



- 듣고 있는 것 : 잔나비 <환상의 나라>

- 읽고 있는 것 : 제품의 언어(존 마에다), 얼마나 닮았는가(김보영)

- 마시고 있는 것 : 라바짜 아이스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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