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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Aug 22. 2021

경이로운 시간

경이로운 시간



2021.8.16. 

지난주에는 본업인 회사에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마우스 클릭도 경제적으로 하는 나이지만 어쨌든 회사에 소속된 동안은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도 있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회사에 쏟았다. 그 결과 남은 체력이 없어서 '다다다'에 시간과 마음을 쓰지 못했다. 본업과 부업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게다가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는데 성과를 알리는 지표가 여전히 제자리 수준이어서 힘이 빠지기도 했다(덧붙여,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본업 행사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결국 준비가 부족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느꼈다. 끝으로, 그동안 조용히 누워만 있던 사랑니들이 존재감을 드러내 치통에도 시달렸다. 내게 얼마나 힘든 한 주였는지 이제 다들 알고도 남겠지. 여러 가지 불행이 정말 일시불로 찾아왔었다). 사용한 노력과 시간에 비해 그 결과는 정비례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피드백이 예상보다 저조하니 그저 의연하기가 쉽지 않다.


"무더위가 물러간다고 합니다!"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어느 날 출근길에 느꼈던 한 줄기 바람이었는데 분명히 전날의 그것과는 달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말복도 이미 지난 시점이어서 무더위가 곧 물러갈 것임을 알리는 전령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줄기 바람이 지금 이 힘든 시간도 곧 지나간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시간은 내가 봐주지 않아도 그렇게 꼬박꼬박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경이롭다.


덕후 기질이 없는 나는 무엇 하나를 끈질기게 좋아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아예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무엇인지 당당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난 덕후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고 관련된 콘텐츠를 보고 수집하는 것도 즐긴다. 최근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는 자를 추켜세우지만 정해진 미래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 앞에 어떤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에. 최근 SF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영화의 영향이 크다. 원작 소설인 테드 창 작품에 대한 관심이 배명훈, 김초엽, 김보영 소설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은 모든 창작자들의 주요 화두이다. 그들의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그리고 꼭 어떤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내 머리 안에는 늘 과거나 미래를 여행하는 나만의 필름이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시간덕후입니다.


시간을 정면으로 다룬 과학서적도 기회가 닿는 대로 읽고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반복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이제는 더듬더듬 따라 읽을 수 있는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이전의 나는 시간과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추구하였는데 과학서적을 읽다 보니 이제는 이 질문을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책을 읽으면 '시간'보다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연구했을 인간들'에게 더욱 관심이 가는데 특히 아인슈타인이 왜 위대한 인물인지(영화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강아지 이름이 왜 아인슈타인인지) 절감하게 된다(하지만 우유 이름에 왜 아인슈타인을 붙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명석한 두뇌에 대한 소비자의 갈망을 채우기에는 연세우유, 심지어 서울우유로도 부족했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카이스트우유의 어감이 별로였던 것일까). 사실 시간 역시 인간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기에 시간에 대한 연구는 곧 우주에 대한 연구라고 한다. 이들이 끈질기고 지독하게 밝혀낸 우주에 대한 비밀을 읽다보면 인간의 능력 역시 우주만큼 무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도 시간만큼 경이롭다.


저는 이름이 있습니다.

'다다다' 콘텐츠를 캐릭터 중심으로 펼쳐나가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풀어낼 수 있는 캐릭터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간여행'이 갖는 환상성을 감쇄할 수 있도록 어두운 캐릭터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캐릭터가 '김회용'이라는 캐릭터다.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친구다. 과거로 돌아가기를 너무 간절히 바란 나머지 기적이 일어나 10년 전 과거로 돌아왔지만 시간여행의 충격으로 인해 정작 자신이 왜 그렇게 간절히 과거로 가기를 원했는지는 잊었다는 설정이다. 이럴 거면 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소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기억이 돌아오길 기다리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미래로 다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다른 캐릭터들이 이 캐릭터를 만나면 줄곧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텐데 각 캐릭터의 개성에 반응하며 에피소드를 그려보려고 한다.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게 될지 나 역시 기대된다. 시간에 대한 더 많은 생각과 공부가 필요하겠지.


터프한 한 주를 보내면서 의기소침해진 것도 사실이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발전이 없어서 마음이 자꾸 조급해진다. '다다다'를 처음 그렸던 올해 1월과 달리 이제는 시간의 압박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시간에 관한 책을 읽으며 해답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마침 지금 읽고 있는 『시간의 이빨』이란 책에서 이런 문장을 찾았다. 


'현재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그곳에 도착하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딘가를 향해 걷기만 한다면 시간이 나를 그곳에 데려다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저 걸어볼 수밖에 없다. 정말 그곳에 도착하는지는 나중에 같이 확인해봅시다.




- 요즘 읽고 있는 책 : 시간의 이빨(미다스 데커스), 제품의 언어(존 마에다), 무한화사(이성복), 행복의 충격(김화영)

- 요즘 듣고 있는 노래 :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날아라 병아리(이상 넥스트)

- 요즘 마시고 있는 것 : 에티오피아 니구세 나레 내추럴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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