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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Sep 06. 2021

얼마나 아이러니인지.

2021. 9. 2. 목.


나는 도대체 뭘까? 이 생각을 어른이 된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솔직히 아직도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하고 겸연쩍다. 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할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다("왜 나만 빼고 다 아는 거야?"). 어떤 사람은 나를 느긋하고 여유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나는 화장실에서 슬리퍼를 제대로 신지 않고, 밟아서 끌고 다니는 아주 성급한 인간이다. 또 혹자는 나를 외향적이고 앞에 나서길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남 앞에 나서는 것은 내가 가지무침만큼 싫어하는 일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도 결국 내 모습이기에 그들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못하겠지만 사실 내 안에는 정말 다양한 내가 있어서 나를 뭐라 규정하기 힘들다. 사람은 질문 몇 개로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인간은 계속 변하니까. 


인간은 변한다


지난 포스팅을 쭉 읽어보니 제법 자신만만하고 의욕 넘치던 과거의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최근 몇 주 동안 의기소침해진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가을을 타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역시 힘껏 출발했을 때에 비해 추진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있고 그림, 기획 등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초기에는 그래도 한발 한발 확실히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들로 인해 포스팅에서 보여지는 것과 다르게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삶의 정체를 느낄 때는 역시 위인들의 이야기를 땔감으로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 최고다. 이전에는 주로 작가들의 자서전을 땔감으로 썼는데 이번에는 성공의 확신에 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마이클 조던의 전기를 샀는데 또 다른 마이클이 생각나 한 권을 더 샀다. '더 킹 오브 팝' 마이클 잭슨의 자서전이다. 두 책 모두 그들이 인생만큼 두껍다(나중에 내 자서전을 쓴다면 헬스장 전단지 정도 분량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래서 다 읽을 때까지 두 마이클의 이야기가 포스팅에 종종 등장할 것 같다. 이런 성공 신화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나 같은 일반인에게 오히려 절실하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황제 마이클과 왕 마이클


'다다다' 콘텐츠 제작을 시작할 때 구체적인 콘셉트는 없지만 나와 결이 비슷한 분들은 좋아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야기를 그렸다. 그 비슷한 결이란 것도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약 30회 가까이 그려놓고 보니 알 것 같다. 그 결은 '아이러니'에 대한 관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특정한 태도가 있다. 행복해야 한다든지, 사랑이 으뜸이라든지, 돈이 최고라든지, 목숨보다 신념을 지켜야 한다든지 등등. 이러한 태도를 도구로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런저런식으로 저울질도 해보고 중요한 순간에 결정도 해보고 무엇을 가지려고 노력도 해본다(이런 태도 중에 요즘에는 '행복'이 노골적으로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다. '행복'이 모든 문제를 사라지게 하는 만능열쇠 역할도 하고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어떤 경지가 되기도 한다. 행복이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시대다. 행복이 너무 비대해진 나머지 삶의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도 행복으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어떻게서든 빠르게 행복으로 오염시키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은 중요한 일지만 모든 것들을 결국 행복으로 깔때기하려는 시도들을 볼 때마다 자주 아연하게 된다. 예를들면 이런거다. 한참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주는 척하다가 툭 내뱉는다. '그래서...지금 행복하니?"). 

나에게는 '아이러니'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살면서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겪을때마다 삶이 정말 불가해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삶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이 이상한 문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단언할 수 있는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은 독자라면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내 삶에 박혀있는 아이러니한 순간들을 하나씩 들춰보다보면 '참...삶이라는 게 이렇구나'라는 말을 절로 내뱉게 된다.

'아이러니'를 정의하는 말들은 많겠지만 내 생각에는 '삶에는 어떠한 진리나 법칙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상황이나 사건'이다. 매우 확신에 차 어떤 결과를 예측했어도 삶은 꽤 자주 내 기대와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이런 경우에 나는 원인을 찾곤 하지만 사실 뚜렷한 원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이 그렇다. 사람들은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삶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 뿐이다. 삶을 실감하는 데 오감을 곤두세워야 한다. 삶이 어떤 것인지 항상 느껴야 한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아이러니'가 삶을 절감하게 해준다. 나는 '아이러니'를 통해 삶과 접촉한다.


이런 내 생각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캐릭터가 있다.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잘 이해하고 있는 친구라서 조금 퉁명스럽고 예민하고 세상에 절망하는 면도 있지만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포용력은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그런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아이러니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다보니 내 콘텐츠가 행복, 위로, 공감 등을 전해주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어딘가에 나 같은 아이러니스트들이 있겠지. 좀 더 힘을 내봐야겠다. 미래의 성공을 확신한 두 마이클의 책을 읽으며(내가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또 얼마나 아이러니인지).


- 요즘 읽고 있는 책 : 시간의 이빨(미다스 데커스), 행복의 충격(김화영), 마이클 조던(롤랜드 레이즌비)

- 요즘 듣고 있는 노래 : 윤종신, 박정현

- 요즘 마시고 있는 것 : 노 서프라이즈(커피 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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