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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Sep 18. 2021

고양이, 멧돼지 그리고 산

2021. 9. 15. 수.

가을


지금 사는 집 뒤에는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급경사를 지그재그로(반드시 지그재그여야 한다. 그래야 덜 힘들다) 올라가다보면 인왕산 성곽길 입구가 나온다. 성곽길 입구에서 운이 좋으면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다. 동물과 인연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길거리에서 고양이들을 만나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들어 애정을 담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고양이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뭘 보냐?'라는 표정으로. 그러면 너무 무안해 하지 말고 그냥 올라가면 된다.


뭘보고 있니


운이 나쁘면 멧돼지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실제로 만났다. 사리분별이 잘 안되는 나는 당시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하며 핸드폰 카메라로 멧돼지를 촬영했다(멧돼지를 만났을 때 우산을 펼치면 장애물로 인식하고 그냥 피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경험자인 내 생각에는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우산보다 카메라를 먼저 꺼내드는 바람에 멧돼지에게 당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생길 것만 같다. '멧돼지 주의' 현수막에 "카메라 말고 우산을 꺼내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일이 시급하다). 인왕산 호랑이가 유명하다지만 내 생각에 인왕산의 주인은 멧돼지이거나 고양이들이다. 그들의 영역을 가급적 침범하지 말고 조심히 올라가야 한다.


그대가 이 산의 주인인가?

성곽길 말고도 인왕산을 올라가는 길은 여럿인데 그 중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서 '무무대'를 지나 입산하는 길도 참 좋다. '무무대'에서 휴식 삼아 고요한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은 몹시 매력적이다. 무무대에서는 청운효자동, 사직동, 경복궁, 광화문, 세종대로가 눈앞에 펼쳐지는데 서울 전체가 눈앞에 드러나는 인왕산 정상의 풍경이 한 눈에 담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스케일이라면 무무대의 경치는 과하지 않다. 꼭 산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무무대만 즐기고 퇴산해도 충분하다. 벚꽃이 피는 4월에 무무대로 가는 길은 밤낮으로 아름답다.


무무대에서 보는 서울


이 동네에 살게 된 이후로 인왕산을 정말 많이 다녔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경우 출근 전 인왕산을 오르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고(하지만 인왕산에 오르며 그날의 체력을 다 쓴 나머지 정작 회사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세상이 다 싫어질 때면 범바위에 누워 한참을 눈감고 있다가 다시 눈을 떠 사위를 둘러보곤 했다. 그러면 눈을 감고 있던 사이에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인왕산에서 참 재밌게 놀았다.


인왕산을 다년간 오르내리며 등산은 정상에 올랐을 때가 아니라 하산 후 내가 올랐던 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을 내려와 성곽길이나 사직단 근처에서 인왕산 전체를 바라보면 조금 전까지도 저 높은 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는다. 믿겨지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인왕산을 오르고 내렸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런 비현실감과 정확한 사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묘하게 삶이 실감된다.


저길 올라갔었단 말이지?


하나의 깨달음을 더하자면(산을 자주 오르니 도인이 되고 있다) 등산은 내가 걸어온 길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방법은 많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장거리 도보 여행이나 마라톤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나의 이동 거리는 생각보다 짧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한 이동은 육안으로 이동거리를 확인하기 불가능하고 지도, 네비게이션으로나 가능하다. 이렇게 확인하는 나의 이동거리는 윷놀이판에서 내 말의 이동경로를 보는 느낌과 비슷해서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비행기 앞좌석에 달린 모니터가 지금 내 상황이 만 피트 상공에서 시속 10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아주 흥분되는 상황임을 알려주지만 나는 턱을 괸 채 화장실 갈 타이밍이나 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게 아닐까. 저기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이동했는지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살고 있지만 정말 살고 있는지 모르겠는 이 삶의 여정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 내가 살고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서('살아 있음'이 순간이라면 '살고 있음'은 서사다). 높은 산을 오를수록 더욱 실감나겠지. 산을 자주 오를수록 더욱 실감나겠지. 그래서 내가 지금 '다다다'라는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겠지.


나도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한 고봉을 정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힘 닿는데 까지 올라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려와 샤워를 하고 현지인들이 입는 다양한 무늬의 망토를 두른 채 그 고봉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의자를 끌어다 앉아 차를 마시며 내 발자국이 남겨져 있을지도 모를 등산로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갈라진 입술을 이빨로 뜯으면서. 철없는 바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머리 속에서 만큼은 한계, 편견, 선입견 같은 것들을 지우고 이런 것들을 언젠가 진짜 할 수 있다고 자유롭게 상상하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이 정도면 이미 내공이 상당한 도인이지 않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자유롭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과는 가리키는 지점이 좀 다르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라는 행위보다는 사고에 가깝지 않을까. 자유로운 사고. 모든 장애물들을 걷어 치우고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무엇을 처음 대면하였을 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성에 의한 판단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일단은 생각이 놀도록 놔두는 것.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하는 행위가 자유로운 행위일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를 선행하지 않고서는 자유로운 행위는 불가능하며 이럴 때는 방종이라고 한다(다시 말하지만 인왕산 도사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요즘 나는 자유롭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사랑, 희망과 같은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 '빨간망토 챠챠'를 많이 늦게 이해하고 있다). 


'다다다' 안에도 자유로운 캐릭터를 넣고 싶었다. 겁 없이 상상하고 그 중 일부는 실제로 해내기도 하는 사람. 어떠한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그래서 우리가 자주 선망하는 사람. 내가 못되어본 사람. 문과생이면서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면서 자주 즐겁다.


물어보지마.


'다다다' 캐릭터를 한 명씩 소개하다보니 마트료시카처럼 나를 하나씩 꺼내어 선보이는 느낌이다. 나는 마트료시카로 치면 인형 두 개 정도 꺼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나를 네팔에 있는 어느 의자에 앉혀 주겠지.


마이클 조던 전기는 착실하게 읽고 있다. 요는 그의 타고난 경쟁심, 투쟁심이다. 이 요소가 조던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대결 구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에 별다른 경쟁심, 투쟁심을 느껴본 적 없던 나지만 최근 다른 콘텐츠들을 보면서 전에 없던 질투를 느끼고 있는데 혹시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조던은 이 질투를 매우 의도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한 원동력으로 전환시킨 것 같다. 나도 마이클 조던을 본받아 그렇게 해야겠다 라고 감상을 마무리하고 싶지만...그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책을 다 읽어도 영업비밀이라 안 알려줄 것 같은데. 일단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 요즘 듣고 있는 것 : 검정치마의 노래들

- 요즘 마시고 있는 것 : 다크 리브레(커피 리브레)

- 요즘 읽고 있는 것 :  마이클 조던(롤랜드 레이즌비),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리처드 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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