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동안 본 네 편의 영화 이야기
2024. 6. 7.
지난 1주일 간 극장에서 영화를 네 편 보았다. 한 달에 네 편 보기도 쉽지 않은데 한 주에 네 편은 역시 많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좋은 영화가 많았고(신기하게도 좋은 책과 좋은 영화는 꾸준히 나온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았다. 좋은 날씨에는 역시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이런 날씨에 사람들은 햇볕을 쬐며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러닝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은 그 좋은 날씨를 전혀 즐길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1주일 동안 좋은 날씨 덕분에 극장을 네 번이나 간 것이다('다다다'에 인풋이 필요하다는 핑계도 있었다).
지금부터는 그 네 편에 대한 단상.
<드림 시나리오>
정말 오랜만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인 영화를 봤다. 내가 본 그의 영화는 대충 꼽아봐도 <페이스오프> <콘 에어> <더 록> <노잉> <넥스트> 등 10편이 넘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찾아서 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많이 봤다. 재미있다는 할리우드 영화에는 늘 그가 출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중요한 대사를 하기 전 보여주던 아주 깊은 비강 호흡을 좋아했다. 그의 영화를 한창 보던 청소년 시절, 그의 호흡이 내게는 어른의 숨소리 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에게서 그런 숨소리가 나진 않지만.
<드림 시나리오>는 흥미로웠다. '캔슬 컬처'는(내가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대리 경험을 해보니 무척 괴로웠다. 그렇지만 니콜라스 케이지가 계속 입고 다니는 겨울 점퍼의 열연 덕분에 괴로움을 참고 끝까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겨울 점퍼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망토와 견줄만 한데, 특히 겨울 점퍼에 달린 모자가 뒤집어진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였다. 니콜라스 케이지(그리고 겨울 점퍼)에게 앞으로도 좋은 시나리오가 전달되었으면 한다. 훌륭한 배우의 좋은 연기를 더 이상 못 보는 일은 개인적으로 그만 겪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 사태>
낸 골딘은 미국의 사진작가다. 나는 그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새클러 가문은 예술계와 학계에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해온 미국의 부유한 가문 중 하나다. 나는 이 가문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새클러 가문은 소유한 제약회사를 통해 마약성 진통제를 판매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이 중 일부를 후원 사업에 사용해왔다. 세계 유명 미술관, 박물관에 새클러 가문의 후원 사실이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낸 골딘은 새클러 가문의 진통제로 인해 64만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후원 표기를 없애고 새클러 가문을 규탄하는 시위를 펼친다. 시위에 대한 기록은 4년이지만 그녀의 젊은 시절 기록이 남아있어 시대가 얼마나 많은 것을 그녀 그리고 그녀의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갔는지를 증언한다. 이 증언이 가능했던 건 시대의 강탈에 늘 예술로 맞선 그녀의 용기 덕분이다.
후원(기부, 봉사활동 등등)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계심을 품고 있다. 어떤 악마들은 자신의 뿔을 감추기 위해 후원의 모자를 쓴다는 것. 후원 활동을 하지 않는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나 싶긴 하지만.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
4시 10분 영화를 예매한 나는 티켓을 출력하기 위해 키오스크로 갔다. 이때 시간은 4시. 예매번호를 입력하니 내가 예매한 목록이 떴는데 손으로 스크린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글씨 색도 회색이었고 목록이 비활성화되어 있는 듯했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스마트폰으로 예매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예매 목록을 확인해 보니 4시 10분 영화는 환불 처리된 티켓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예매한 영화는 3시 영화로 되어 있었다. 추론을 해보자면 내가 4시 10분 영화를 예매했다가 취소하고 3시 영화를 다시 예매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솔직히 얘기하자면 지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태를 파악한 나는 부랴부랴 남아 있는 4시 10분 티켓을 구매하고(다행히 좋은 자리의 티켓이 있었다) 상영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헛되게 날려버린 영화표 값을 아까워하며 쓰린 속을 움켜쥐었다. '영화표 값을 두 번이나 내다니. 평소에 안 하던 후원을 이런 식으로!'. 이후 쓰린 속을 달래고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무척 노력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단상은 그렇게 두 번 낸 영화표 값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좋았다는 것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홀로코스트에 대한 콘텐츠는 정말 많다.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이다. 나 역시 관련된 책, 영화, 다큐멘터리를 제법 봤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견학하기도 했다. 홀로코스트는 나에게 큰 관심사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뒤 홀로코스트가 내 관심의 영역에 있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인류의 비극들을 단지 관심 있는 흥미로운 콘텐츠로만 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숙연함만을 동반한 채(이마저도 빠르게 휘발되어 버리지만) 말이다.
결국 나도 아우슈비츠의 사령관 회스와 그의 가족처럼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난 뒤, 회스가 계단을 내려가며 반복하던 토악질이 왜 멈추게 되었는지를 곱씹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만행은 나치의 만행만이 아닌 것이다.
위의 영화들 중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제법 덥게 느껴졌다(마음은 몹시 서늘했지만). 여름이 시작될 모양으로 지금처럼 좋은 날씨는 한동안 만나기 힘들 것 같았다. 낮에 영화를 보러 나오는 일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극장을 가고 오는 것만으로도 지칠 테니. 대신 밤에 보면 되겠지. 여름밤의 날씨는 또 그런대로 좋고 인풋은 언제나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