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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n 14. 2024

기쁨이 나를 움직이게_<인사이드 아웃 2>

* 이 글에는 <인사이드 아웃 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 쓴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한낮의 무더위를 견디며 극장까지 가는 건 역시 힘들다. 그래서 극장에 가야 한다면 밤에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잠을 줄이면서까지 가고 싶지는 않으니 웬만해선 극장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가을이 올 때까지 한 번도 안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웬걸. 나는 바로 이번 주에 밤극장을 다녀왔다. 9년 만에 돌아온 <인사이드 아웃 2>를 보기 위해서. 

  6월 12일 밤 11시. 이미 영업 종료된 쇼핑몰을 지나 영화관이 있는 6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쇼핑몰에는 내일 영업을 위해 가게의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직원들, 나처럼 영화관으로 향하는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어둡고 적막한 쇼핑몰을 걷는 기분은 마치 내일을 위해 깊이 잠든 쇼핑몰의 꿈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6층에 올라가니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다. 이렇게 늦게 영화를 보는 건 나에게 매우 이례적인 일인데 왠지 저 사람들은 늘 이 시간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저 녀석 처음 보는 얼굴인데?' '걸어 다니는 폼이 영 밤극장스럽지 않군'. 이렇게 수군대는 사람들을 지나며(순전히 혼자 생각입니다)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인사이드 아웃2


티킹, 티킹, 티킹, 티킹, 꾹-꾹-꾹-, 꾸욱-쿵. 탁. (픽사 오프닝)


  <인사이드 아웃 2>는 13살이 된 라일리의 이야기다. '기쁨, 슬픔, 까칠, 소심, 버럭' 정도의 감정만 가지고 있던 아이는 이제 더 많고 복잡한 감정을 가진 소녀가 되었다. 라일리가 고대하던 '아이스하키 캠프'에 친구들과 참가하는 날. 그녀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불안, 당황, 부럽, 따분, 추억(노스탤지어)'이다. 새로운 감정들은 기존의 감정들이 라일리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들을 잠시(어쩌면 영원히) '기억의 저편'으로 쫓아낸다. 

  이제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는 새로운 감정들만 남았다. 그 결과 그녀는 예전의 그녀라면 하지 않았을 새로운 선택들을 하며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수, 잘못, 실패를 거듭하며 점점 위태로워진다. 한편, 추방당한 기존의 감정 5총사( '기쁨, 슬픔, 까칠, 소심, 버럭' )는 라일리의 성장을 위해 자신들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 슬퍼하면서도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랑하는 라일리가 잃어버린 자아를 돌려주기 위해 본부로의 귀환을 진행한다(이 모든 소동들이 사실 모든 감정들이 라일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꽤 감동적이다). 


'불안'이의 폭주로 인해 라일리의 감정적 위태로움이 극에 달할 때, 귀환에 성공한 '기쁨'이는 우여곡절 끝에 '불안'이를 진정시킨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그 순간,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러와 '기쁨'이가 희미하게 이어진다. 당황하는 '기쁨'이에게' 슬픔'이가 말한다.


 "기쁨아, 라일리가 널 부르고 있어."

그렇게 라일리는 스스로 '기쁨'을 선택한다. 


  감정의 폭풍을 겪어낸 뒤 한 단계 성장한 라일리는 그만큼 삶을 더 알게 되었다. 사실 삶은 복잡하고 어려운 선택의 연속이다. 아이러니와 딜레마가 삶의 진짜 모습이며, 명쾌하기보다는 애매한 것이 삶이다. 이러한 당황스럽고 아픈 깨달음 뒤에 라일리는 놀랍게도 가장 먼저 '기쁨'이를 부른다. 그렇기에 이건 호명이자 선언처럼 느껴진다. '삶이 그런 것일지라도 나는 기뻐하겠다'라는.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그 부분도 정말 '잘' 해내고 있지만). 오히려 그 시절을 지나온 후유증을 앓고 있는 어른들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그 후유증 끝에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였는지에 대해서(누군가는 '슬픔'이를, 누군가는 '따분'이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의 저편'에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감정은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나는 추가로 내 '비아냥의 협곡'의 너비와 크기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이 기회에 조금 메워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고통이다'라는 명제를 체감하였다는 핑계로 내 감정들을 얼마나 단조롭고 얄팍하게 만든 것일까. 나 역시 내 머릿속 감정 컨트롤러는 기쁨에게 맡기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기쁘게 실감하는 것일 테니.

  영화 내내 감정적으로 불안한 라일리는 어느 순간까지는 불호에 가까운 캐릭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끝까지 봐야 한다. 그녀의 감정의 추이를 따라가던 관객은 결국 '기쁨'이를 호명하는 그녀를 응원(어쩌면 사랑)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시기를 보내며 어른으로 성장한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라일리에게 보낸 그 응원(어쩌면 사랑)이 거울처럼 관객 스스로에게 반사된다(마지막 장면의 라일리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모습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캐릭터와 관객이 깊게 공명하며 똑같은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이 영화의 큰 성과 중 하나일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속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슬픔'이와 '불안'이를 겪은 '기쁨'이에게 다음으로는 '추억' 할머니를 경계하라고 일러두고 싶다. 그 할머니는 정말 세고 노련하다.


  영화가 끝나고 더듬더듬 오던 길을 되짚으며 밖으로 향했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었는데 지금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있었다. 극장의 밤은 낮보다 길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에 찾게 될 밤극장의 영화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무서운 영화만 아니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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