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밤에 극장을 자주 찾게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기 위해 밤극장을 가게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극장에서 재관람을 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재관람을 하며 굉장히 지루했던 기억이 거의 공포처럼 남아있다(어떤 영화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궁금한데...).
'좋은 영화였는데 다시 보니 이렇게 지루할 수가'라는 충격적인 체험을 한 기억이 몸에 각인되어 있어서 아무리 좋았던 영화라도 선뜻 재관람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감상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한 번 더 볼까?'라는 질문에는 역시 그 '재관람의 공포'가 발동하여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영화가 명작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뭔가 영화를 잘못 봤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영화는 이렇게 보는 게 아니다'라는 마음에 다시 밤극장을 찾은 것이다. 1차 관람을 한 건 6월 5일. 약 2주 만인 6월 18일, 다시 이 영화 앞에 앉았다.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물론 '영화를 제대로 보는 법' 같은 건 없겠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지옥 옆에 천국 같은 사택을 짓고 살던 수용소 소장 회스 중령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은 이미 많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나올 것이다. 이는 인류가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이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이 소재를 기본적으로 흥미로워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류의 비극을 '흥미로운 소재'라고 표현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기에(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으니) 이야기를 나로 한정해서 말해보겠다. 홀로코스트는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소재이다. 내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본 건 그 흥미 때문이었다.
홀로코스트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이제 막 30대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내게 벌어진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 체 겪어내기에 바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문제는 전혀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것들을 당면했다는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데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당혹스러웠지만 어쨌든 겪어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때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불가해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래야 당면한 일들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는 시간, 우주, 종교, 아이러니, 가족 같은 것들과 함께 홀로코스트가 있었다(그리고 비행기도 있었다).
처음의 홀로코스트는 커다란 '슬픔 덩어리'처럼 내게 존재했다. 그리고 그 덩어리들을 조금씩 떼어내며 살펴보자 슬픔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 어떤 뒷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 선은 무엇이며 악은 무엇인지, 논쟁거리는 무엇인지, 교훈은 무엇인지 등등. 이 조각들을 살피는 일에 '흥미의 가속도'가 붙어 나는 점점 더 많은 콘텐츠들을 찾아봤다. 지금도 내 책장에는 사놓고 읽지 않은 홀로코스트 관련 책들이 있으며 나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견학 경험을 수다의 탄창 속에 넣고 기회만 있으면 이야기하리라 장전 해놓고 있다(다행히 한 발도 발사된 적 없었으나 방금 한 발이 발사된 듯하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마지막에 이르면, 잠시 아우슈비츠를 떠나 있던 회스가 복귀 명령을 받는다. 헝가리 유대인 수십만 명을 아우슈비츠에 수용하는 작전 실행을 위해 나치가 그를 복귀시킨 것이다. 이 작전이 자신과 아내의 이름인 '회스 작전'으로 명명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된 그는 늦은 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린다. 통화를 마치고 텅 빈 집무실을 나온 회스의 머릿속은 이미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던 그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한다. 하지만 입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 다음 계단을 내려가자 다시 헛구역질을 한다. 잠시 후 진정을 되찾은 회스가 고개를 돌려 왼편의 무언가를 응시하는데 그때부터 영화는 현대 시점으로 바뀌며 이제는 전시실이 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가스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직원들이 열심히 쓸고 닦는 전시실에는 그곳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의 신발, 가방과 같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조금 있으면 관광객들이 이곳을 견학하며 전시품이 된 유품을 관람할 것이다. 그렇게 미래의 장면을(아마) 본 회스는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그는 더 이상 헛구역질을 하지 않는다. 괜찮아졌다.
회스가 헛구역질을 한 것은 결국 무엇인가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 반응 혹은 두려움 때문일 텐데 그가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본 뒤 안심하고 '회스 작전'을 진행하러 간다면 역시 우리의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 이 영화를 다시 보러 간 것이다. 오로지 흥미가 이 영화 관람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 그리고 흥미 위주로 이 영화를 감상했다는 점이 마치 무언가가 얹힌 것처럼 마음 언저리에 남아있었다. 영화에 과몰입한 나머지 '인도주의적 감상'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어지간해선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보지 않는다. 분명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대로 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영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두 번째로 본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첫 번째로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흥미를 지우고 영화를 보았다. 그러자 남은 건 역시 슬픔이었다. 슬픔 덩어리를 분해하고 분석하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이 비극의 원형이었던 슬픔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아무리 많은 관련 지식과 통찰을 쌓는다 해도 슬픔을 잊는다면 이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관람 때는 너무 길어서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영화 시작 부분의 암전. 두 번째 관람 때는 그 암전이 어쩌면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눈을 감고 추모 비슷한 것을 하였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그래서 용서할 자격도 용서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이런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마냥 아무 생각 없다가도 필요할 때는 자세를 고쳐잡는 일 말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 정말 전쟁을 막을 리는 없겠지만.
극장을 나오니 여름밤이 깊어져 있었다. 아직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긴하지만 앞으로의 열대야가 걱정되는 날씨였다. 한편으로는 여름밤에는 n차 관람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관람의 공포'가 '무더위의 공포'보다 더하진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