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태풍클럽>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게 되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좋아하는 배우, 흥미로운 입소문, 신뢰하는 감독, 관심 있는 이성의 관람 여부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내 궁금증은 이거다. 단지, 포스터가 좋아서 보신 영화가 있나요? 저는 얼마 전에 생겼습니다. <태풍클럽>이라는 영화이며 포스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곱 명 학생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이 단순한 포스터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게다가 제목도 <태풍클럽>이라니. 축구를 사랑하는 일곱 명의 학생들이 학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성 축구 클럽을 만들어 지역 대회에 출전, 1차전에서 작년도 우승 팀을 만나 신승하였으나 2차전에서 대패하여 탈락. 그렇지만 결국엔 아름다운 청춘 서사를 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누구나(혹은 나만) 하게 만든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포스터와 일면한 그 자리에서 영화를 예매하였다.
영화를 본 건 6월 28일 금요일. 이날 나는 좀 바빴다. 사실 지금 두 번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꽤 열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에피소드 업로드도 당분간 쉬고 이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역시 일정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성실하게 그리는 만큼 일정도 성실하게 밀리고 있다. 이날은 특히나 실수가 많고 완성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이 겹쳐져서 스트레스를 꽤 받고 있었다. 그래도 밤극장에 간다는 설렘으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갔다. 영화 시간은 밤 8시 40분. 나는 8시가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밤극장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오니 덥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비 냄새가 묻어 있는 바람. 괜히 긴팔 니트를 입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 소설 <붉은 바람>에서는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고온건조한 열풍이 분다. 소설 속 주인공 필립 말로에 따르면 이런 날은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고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권총을 들이미는 일도, 우연의 우연이 겹치는 일도, 처음 본 여인을 위해 번거롭게 목숨을 거는 일도 말이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긴팔 니트 때문에 더 불쾌하고 덥게 느껴지는 고온다습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날은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예를 들면, 기대와 달리 포스터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영화를 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태풍클럽
<태풍클럽>은 일본 시골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태풍과 함께 한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때 예보에 지나지 않았던 태풍은 이내 강력한 비바람이 되어 이들에게 상륙한다. 이로 인해 감정, 욕망들의 빗장이 풀리며 이들은 기이한 태풍 속 1박 2일을 보내게 된다(그런고로 축구 대회 같은 건 없다).
1985년에 개봉되었다가 4K 리마스터링(영화의 세월을 지우는 대단한 기술이다)으로 재개봉한 이 영화의 여러 시퀀스는 뜨악하다. 하지만 태풍이 상륙하기 직전 리에의 집 앞에 서 있는 미카미의 셔츠를 흔드는 불길한 바람의 모습과 리에의 방 창밖으로 들리는 불안한 바람의 소리는 잊을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너(너희들) 요즘 이상해졌다'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미카미가 리에에게 한 번, 우메미야 선생이 학생들에게 한 번. 그들이 이상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태풍 때문이다. 매일 다른 날씨 속에서 사람이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길 원하는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나는 날씨에 꽤나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날씨에 따라서 정반대의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더위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겠지만). 어떤 사람은 분명 여름에는 이상한 사람이고 가을에는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다. 비 오는 날에는 활기차고 화창한 날에는 우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날의 날씨가 그날의 사람을 결정하는 데 생각보다 큰 요인인 것이다. 다들 온 힘을 다해 그 요인을 요령 있게 달래가며 매일매일 평균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보통의 날씨가 아닌 거대한 태풍이 다가온다면? 이 또한 어른들이라면 영화 속 우메미야 선생처럼 집 안에서 술을 마시고 가라오케를 부르며 태풍의 시간을 요령 있게 죽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내부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중학생들에게 불어오는 외부의 태풍은 너무 벅찬 상대다. 영악한 태풍은 그들의 내면에 걸린 빗장을 손쉽게 풀어낸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 안에 있던 모든 것을 폭우처럼 세상에 쏟아내는 것이다. 방황으로, 춤으로, 노래로, 죽음으로.
이 영화에는 시간 상의 공백이 있다. 리에가 도쿄로 가출한 것은 토요일, 다른 아이들이 태풍으로 인해 학교에 고립된 것도 토요일이다. 그리고 태풍이 물러간 일요일 새벽에 미카미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리에가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데 이때는 월요일 아침이다. 즉, 태풍이 물러간 직후인 일요일은 영화가 다루는 4박 5일의 시간 중에 공백으로 남아있다. 아이들이 기이한 밤을 보내며 엉망으로 만든 학교와 죽음을 선택한 미카미가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시간을 영화는 다루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 밤의 일은 여섯 명의 아이들과 관객의 일이다(이와는 대조적으로 첫 시퀀스의 수영장 사건은 우메미야 선생에 의해 발견된다). 더불어 가출한 리에의 일요일의 행적은 관객도 모르며 오로지 리에의 몫으로 남아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 나와 내 친구들, 혹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나의 어떤 기억들처럼.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가을 운동회의 소리가 들린다. 태풍이 무엇을 남겼든 시간은 흐른다. 올라가는 글자들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이 영화의 세월처럼, 40년이 지난 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날을 그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극장을 나오자 예의 그 포스터가 걸려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를 본 뒤라 그런지 참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웠다. 그런데 야스코라는 인물이 빠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야스코가 무대 위에서 사회 보는 장면에서 없던 상처가 생긴 것 같은데 이유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영화가 끌어당기는 힘이 세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태풍에 휘말릴 수도 있다. 대신 '흠, 그림은 잘 그리지만 꼼꼼하지는 못하군. 한 명을 빼먹다니 말이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바람은 더 축축해져 비 냄새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장마가 다가오고 있다. 항상 날씨를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