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방심리가 꽤 큰 편이다. 다만 분야가 좀 한정적인데 영화나 소설 속 인물의 행동에 쉽게 감응한다. 반면 실존 인물을 닮고 싶은 마음은 어째서인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같은 반 친구들의 자세나 말투 같은 것들을 흉내 내기도 했었는데 어째서인지 요즘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은 오로지 허구의 인물이다. 이게 호전된 건지, 악화된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한동안 블랙커피와 머핀을 찾아 먹었다. 일명 '도그벽 세트'. 블루베리 머핀을 먹어야 더 완벽한 모방이겠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아쉬운 대로 치즈 머핀, 얼그레이 머핀, 초코칩 머핀을 번갈아가며 먹었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소설 속 멋진 부분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재밌어진 느낌이 든다. 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회 아니면 도저히 혼자 커피와 머핀을 먹을 생각은 못 하는 종류의 사람이니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설이나 영화 속 모든 장면을 따라 하고 싶은 건 아닌 걸 보면 내 나름의 선별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꽤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 그것들을 살펴보면 나란 사람을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행히도, 당연히도 범죄나 폭력적인 장면을 모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듣고, 보고, 가고, 먹고, 마시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며칠 동안은 캔커피와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고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때문에.
퍼펙트 데이즈
영화를 본 건 7월 4일 목요일. 영화를 보러 가기 전, 나는 좀 심드렁해져 있었다. 이전에 본 영화 <태풍 클럽> 때문인데 삶과 사람의 내면을 태풍처럼 할퀴는 이 영화로 인해 세상을 보는 내 관점이 뒤틀려져 있었다(아무튼 감응이 참 잘 되는 스타일인 거다). 회복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퍼펙트 데이즈>라는 제목에 작지만 뚜렷한 반감을 느꼈다. 기실 삶은 고통과 혼란의 연속인데 '완벽한 날'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가(거기에다가 복수형 '즈'라니). 10점 만점에 8점 정도로 '자기 계발'과 '힐링'의 열풍을 이용한 그저 아름답기만 한 영화일 것이라 추측하며 밤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를 본 곳은 광화문 씨네큐브. 지금껏 본 밤극장 영화 중 가장 관객이 많았다. 야쿠쇼 코지 혹은 빔 벤더스의 힘인가? 그렇지 않으면 역시 이 영화에 기대어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까? 그래도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며 뱁새눈을 한 채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약 5분 뒤, 이 영화에 대한 모든 반감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삶을 긍정하는 모드로 바뀌었다(진짜 감응이 쉬운 스타일인 거다).
이른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도쿄의 아저씨 히라야마의 12일간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의 일상은 얼핏 보면 매일 똑같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된다. 주중에는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어제 읽은 책의 마지막 부분을 확인한다. 그런 다음 씻고 작업복을 입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간다.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은 뒤 차에 타고 그날 청소해야 할 공공화장실로 향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샌드위치를 먹고 우유를 마신다. 할당된 화장실들의 청소를 모두 마친 뒤에는 목욕탕에 가고 지하철역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주말에는 집 청소, 빨래, 사진 찾아오기, 문고판 책 구입 등의 일을 반복한다.
영화가 이처럼 단정하게 반복되는 삶을 보여주는 것 정도에 그쳤다면 나의 삐뚤어진 마음은 결코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의 과업을 반복하듯이 사는 방식이 내게 맞지 않다는 것을 얼마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첫날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12일의 긴 호흡으로 히라야마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단 하루도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빗방울이 매번 다른 곳에 떨어지듯, 나뭇잎 사이의 햇빛이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반짝이듯, 히라야마의 일상 역시 변화가 찾아온다(12일 중에 무사한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변화들이 견고한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려 할 때, 그는 생각보다 쉽게 일상을 허물어 자리를 내어준다. 매일의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그에게 없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변화를 수용하는 그 모습이 단정함에 가려진 그의 삶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영화 후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와 겹쳐치면 더 어두워질 것 같냐는 질문에 몸소 증명을 해 보이던 히라야마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일정한 패턴으로 삶을 꾸리는 그가 변화를 긍정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머리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마음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지금 붙들고 있는 이 작은 행복들조차 결국엔 사라지고 말 것이라면 남아있는 삶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허무 속으로 빠져든다. 반면 그 본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은 히라야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단정하면서도 유연하게 삶을 누리는 모습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건 영화는 보여주지 않지만 관객들 모두 짐작하듯 그가 감당하고 감내해야 했던 그 많은 일들 덕분일 것이다.
아무리 모방심리가 강한 나라고 하지만, 이런 그의 모습은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캔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 정도로 히라야마 씨를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문밖을 나서며 그날의 첫 하늘을 보고 미소 짓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그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극장을 나오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서둘러 우산을 펼쳐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들어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집으로 돌아가 이불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심드렁했던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