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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l 09. 2021

'절대 선'을 찾아서.


'절대 선'을 찾아서.


2021년 5월 26일(화) 흐림


'다다다'를 시작할 때 모니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스캔 해서 올리는 방법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나의 그림 실력으로는 종이에 깔끔한 그림을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내 포기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많은 일러스트들의 깔끔한 선, 군더더기 없는 선을 그려보고 싶었다. 마치 피겨 선수가 빙판 위를 지나가면 생기는 자국 같은 깔끔한 선. 나만의 '절대 선'. 많은 일러스트들이 어떻게 그 선을 그려내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도 그 선을 갖고 싶었다.


누구는 발로 그려도...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모니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들이 있었다. 영상 편집이 하고 싶어서 2015년에 영입한 13인치 맥북과 작년에 영화 유튜버가 되기 위해 산 와콤 타블렛(인튜어스 프로 PTH-660)도 갖고 있었다(사실 덜컥 사들이고 잘 쓰지 않은 물건들이 몇 개 더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생의 회전목마>를 연주하고 싶어서 구입한 88건반 전자 키보드다. 끝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이 마치 건반 위에 쌓인 먼지처럼 내 마음에 남아있다). 

맥북에는  SKETCH BOOK 이라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데 나는 주로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파일 형식으로 저장이 가능하기에 호환성도 나쁘지 않다. 또 플립북 기능이 있어서 짧은 애니메이션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제 맥북계의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내 맥북에서 포토샵처럼 버벅거리지 않고 잘 구동되었다. 그래서 ‘다다다’도 SKETCH BOOK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SKETCH BOOK

나중에 더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다다’는 찰스 M.슐츠의 ‘PEANUTS’를 레퍼런스 삼아 출발하였다. 아직도 ‘다다다’의 정확한 아젠다를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도 머리를 쥐어짜가며 정의 중이다. 그래도 ‘PEANUTS’처럼 꼭 필요한 선만을 써서 그린 단 네 컷의 만화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 곱씹을만한 통찰, 질리지 않는 반전, 건강한 유머 그리고 귀여움을 전달해주고 싶었다(바람이 제법 앙증맞다). 그래서 초기에 ‘다다다’를 그릴 때는 펜툴을 약간 거친 느낌이 나는 연필로 설정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따뜻한 느낌을 더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4화까지는 그런 느낌을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거친 선들이 내 거친 그림 실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는 다시 예의 그 ‘절대 선’을 욕망하게 되었다. '이대로는 사람들이 가면 속 얼굴을 끝내 궁금해 하지 않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싶으면 어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린스타트업』에서 읽었다. 솔직히 그렇게 살아본 적은 별로 없지만 '다다다'에는 꽤나 진심이기에 나는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펜툴을 깔끔한 선 느낌이 나는 ‘페인트 브러시’로 교체하였다. 한결 나아졌지만 역시 한계는 존재했다. 일단 핸들은 돌려봤는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랐다.


제3화, 거칠고 방황하는 선

그러던 중 요즘 많은 영감을 받고 있는 ‘모베러웍스’의 영상클립들을 보다가 말 그대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모베러웍스의 영상들은 정말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저거다! 디자이너들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쓰고 있구나! '절대 선'의 비밀은 바로 저거였어!’. 그때부터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고(다행히 일러스트레이터는 내 화석 맥북에서 버벅거리지 않았다) 비록 아직은 복잡하고 어설픈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나도 선을 나름 깔끔하게 그리는 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린 것이 16화이다. 


16화 좀 낫지 않나요?

어쩌면 내가 좀 한심할 수도 있다. 쉬운 길을 복잡하게 돌아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이렇게 글을 써놓고 보니 괜히 썼다는 생각도 든다. 내 실력의 밑천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지우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업을 최대한 솔직한 기록으로 남기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이 글을 남겨두기로 했다(어차피 별로 큰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어쨌든 지금 나는 비로소 만족할만한 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인정할 궁극의 '절대 선'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우스로 그림판에 삐뚤빼뚤 그림을 그릴 때부터 궁금해 했던,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고민했던, 매우 갖고 싶었던 그 선이다. 그림을 더 그리고 싶어졌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읽고 있는 책 : 린 스타트업(에릭 리스), 떨림과 울림(김상욱), 리처드 매시슨(최필원 옮김)

듣고 있는 노래 : LOVE YA!(혁오)

마시고 있는 것 : 다농원 결명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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