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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l 09. 2021

남자가 여자 캐릭터를 그린다는 것.

남자가 여자 캐릭터를 그린다는 것.

2021년 6월 1일(화)

비오고 개고 흐림. 습도가 높아졌다.


지금까지 열 여섯 개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 '다다다'에는 총 (가만있어보자...하나, 둘,...) 여섯 명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처음 만화를 그려보는 나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은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한데 '남성의 기준에서 여성의 생각을 섣불리 재단하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내 여성 캐릭터를 실제 여성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기성 작품들에서 그런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에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는 조심스러운 일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 여성 캐릭터를 넣을지 말지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에피소드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1화에는 남성 캐릭터 한 명, 2화에는 남성 캐릭터 두 명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다 3화에는 남성 캐릭터 세 명이 등장할 것이 뻔했기에 나는 여성 캐릭터 투입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사실 고민이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만화이지만 내 설정 안에서 최대한 리얼리티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남녀 캐릭터 모두 필요했다. 그것도 같은 비율로 중요한 역할을 해내야 했다. 그리하여 3화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를 그려봤고 대사도 넣어봤다.


처음 제대로 그려본 여성 캐릭터. 아직 이름은 없습니다만.

여성 캐릭터를 그리기로 하면서 남성 캐릭터에 뒤지지 않는 통찰력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남성 작가가 남녀 캐릭터 간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너무 단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성 캐릭터보다 우위에 선 여성 캐릭터의 모습으로 그 통찰력과 지혜를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인데 이는 많은 일본만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다루는 모습과 흡사하다. 마치 '칼과 칼집'처럼 덜 성숙한 사고뭉치 남자 캐릭터를 성숙한 여자 캐릭터가 포용하는 설정의 일본 만화들을 정말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설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캐릭터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이런 방식으로는 스토리가 도식화되고 리얼리티는 떨어지고 만다. 읽는 독자들에게도 바람직한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혀 남녀 관계는 전혀 칼과 칼집의 관계가 전혀 아니기에. 네. 전혀요. 결국 남성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강함이나 매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성격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이것은 남성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내 캐릭터들이 부족함, 온전함, 성숙함, 미숙함을 모두 갖고 있기를 바란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를 그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도전이긴 하지만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면 의미 없는 도전으로 남을 것이다. 더욱 더 독립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공부하고 훈련해야 하는 이유다. 마침 지금은 숨을 고르기 위해 4컷 만화를 잠시 멈추고 캐릭터별 일러스트를 업로드하고 있는데 이 이후에는 명확해진 캐릭터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에게 뚜렷한 성격을 부여하는 작업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고민하는 시간이 꽤 즐거워서 나도 기대가 된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아직도 이름은 없습니다만.

한편 이 글을 쓰면서 그렇다면 과연 남성에 대해서는 스스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역시...알리가 없다. 아무래도 공부가 많이 길어질 것 같다. 



읽고 있는 책 : 린 스타트업(에릭 리스), 사랑은달아서끈적한것(박상), 재와 사랑의 미래(김연덕)

듣고 있는 노래 : 2015 쇼팽 콩쿠르 실황앨범(조성진)

마시고 있는 것 : 스타벅스 자몽허니블랙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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