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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l 09. 2021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


2021년 6월 9일(수)

어쩔 수 없이 여름


'다다다'를 그리면서 나의 부족함들을 초 단위로 깨닫고 있는데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정말 많다. 중요한 문제들을 꼽아보자면 부족한 문장력, 구성력, 그림 실력(그런데 문장력, 구성력 같은 표현이 허용된다면 그림력이라고 써도 괜찮은거 아닐까. 요리력, 워드력, 엑셀력, 사랑력 같은 표현도.)이 있을테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역시 문장력, 구성력, 그림력(에라 모르겠다.)이 있을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문제가 있는데 바로 이 콘텐츠가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좋은 만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너무 포괄적이고 게으르다. 능력이 없는데 게으르다는 소리까지 들을 순 없다. 그것만은 피해야 하기에 잘 벼린 칼로 몇 번씩이나 다듬은 구체적인 가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고 다른 콘텐츠와 차별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의 정체성, 코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만화'는 어떨까. 나름 구체적이지만 식상하며 무엇보다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내 유머는 나와 같은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린다. 그렇지않은 사람들에게는 잡음처럼 들리거나 심한 경우 아예 들리지 않는 경험을 몇 번 했다(그래서 나에게는 아주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같은 유머를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너무 웃긴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반응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두 번, 세 번 거듭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재미도 없을 뿐더러 눈치까지 없는 사람이 되곤 한다). 


인정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고민 없이 그럴싸한 가치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특별할 것 없는 내가 그래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을 확인하려면 결국 나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서 당분간은 나에 대한 분석을 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우선 나는 먹는 것보다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먹방 콘텐츠가 정말 많지만 나는 본 적이 거의 없는데 '마시는 방송(마방)' 콘텐츠가 있다면 챙겨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혹시 정말 '마방' 이라는 콘텐츠가 있을지 몰라서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았더니 차마고도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이 나온다. 


차마고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험한 차(茶) 교역로인데 마방은 차마고도를 다닌 상인들을 일컫는 단어라고 한다. 나의 상상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먼 과거에 사람들이 마실 것을 운반하기 위해 험한 길을 개척하였다는 것이 강한 음료력(?)을 지닌 나로서는 갑자기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마시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을 것이라 상상하면 곤란한데 그런 것들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마신다는 행위가 사람들 마음에 맺히게 하는 심상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게 맞을 듯 하다.



차를 마시자. 예쁜 잔에.

사람들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식사가 강제성을 띄는 것이라면 음료는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이왕이면 재밌게 하자'라는 느낌이라면 (물을 제외한)무언가를 마시는 것은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해보자'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만 마시면서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사람들은 일부러 물 이외의 것을 찾는다. 마실 장소를 찾고 시간을 낸다. 꼭 해야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일부러 한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내 마음이 반응한다. 나도 마시고 싶다. 안해도 되지만 좋아하는 무언가를 일부러 하고 싶다. 내 마음에 그런 감정들이 맺히곤 한다. 


우리나라에 카페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밥 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지금은 다행히 밥 값도 많이 비싸졌다). 하지만 커피 한 잔이 나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식사의 그것보다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그런 생각을 좀 덜게 됐다. 식사로 채울 수 있는 것과 커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물론 여전히 매일 카페를 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자주 하려고 한다. 카페를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깨끗하고 단정한 잔에 차를 담아 마시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하지 않아도 죽지 않겠지만 할 수 있으면 하려고 노력한다. 


나와 세상과의 교집합이 삶의 필수요소라면 거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나의 여집합은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것들이 아닐까. 여집합 속에 있는 숫자들을 자주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주 느끼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아주 짧더라도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마시는 일이다.


'다다다'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캐릭터들은 무언가를 마시는 중인데 대단한 의미를 담고 시작한 설정은 아니다. 그저 내가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캐릭터들에게 부여한 액션이다. 하지만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보시는 분들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일부러 애써서 하려는 마음'이 맺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신기한 일이다). 


사실 그림력(이젠 대놓고)의 한계로 그런 의미를 잘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내 캐릭터들은 아마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일부러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나도 점점 더 그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해본다. 


- 읽고 있는 책 : 사랑은달아서끈적한것(박상),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오쓰카 에이지), 

                         니체(레지날드 J. 홀링데이)

- 듣고 있는 노래 : 한 밤의 뮤직(노브레인), 성시경 8집

- 마시고 있는 것 : 씨그램 탄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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