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 4-2.
날씨가 따뜻해진 주말에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 집에 왔어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살고 계신대요. 나를 귀여워해주시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셔서 참 좋아요. 그리고 고양이도 있고 어항엔 구피들도 있고 또 밖의 여기저기에 볼 것들이 많아서 좋아요. 외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식혜를 만들기 위해 엿기름을 우려내고 계셨어요.
짐을 풀고 있는 내내 동생이 졸린 지 칭얼거려요. 동생을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니 소파 위에 있던 깜장고양이가 재빠르게 일어나서 소파 밑으로 들어갔어요. 고양이 까미는 우리가 나타나서 깜짝 놀랐나 봐요. 까미는 새끼를 배어서 얼마 있으면 새끼가 태어날 거래요. 그래서인지 가까이 가서 안아주려고 하니까 아랑곳하지 않고 부엌 쪽으로 가버려요. 나는 까미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엄마는 동생이 잠들도록 가만가만 토닥거려요. 나는 엄마의 등과 맞대고 엄마가 동생을 토닥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항 속을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구피들을 보고 있어요. 구피는 엄마와 아빠가 어버이날 때 선물한 것이래요. 그 때 외할머니께서 병이 드셔서 집안에서만 계셨어야 했는데 심심하실까봐 사드린 것이래요. 나는 동생이 잠들어야 하니까 엄마에게 구피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4-1. 얼마나 많은 나가 있는지 찾아보세요
어항 속에는 촘촘한 그물로 막은 작은 플라스틱 물통이 한쪽 구석에 매달려 있는데 구피 새끼들이 옹기종기 있어요. 바로 옆에는 산소통에서 물방울이 마구 솟아나요. 어항 바닥에는 물풀들이 돋아나 보기 좋게 자라나 있어요. 구피는 참 별스러워요. 다른 물고기들은 알을 낳아서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는데 구피는 몸속에 알을 품고 다니다가 자라면 새끼를 깐대요. 아빠는 그런 것을 난태생이라고 한다는데 참 어려운 말이에요.[난태생(卵 알 란 胎아이 밸 태 生 날 생): 어미가 정자의 핵과 난자의 핵이 합쳐진 수정란을 낳지 않고, 어미의 몸 안에서 껍데기를 깬 다음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 그런데 더 별스러운 것은 그렇게 애써서 낳은 새끼를 먹이인줄 알고 호로록 먹어버린대요. 새끼들이 죽어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새끼들이 살아나려면 어미를 피해 물속에서 사는 풀들 사이로 달아나서 숨어야만 자라날 수 있대요. 구피들은 제 입에 들어가는 크기의 것은 모두 호로록 삼킨대요. 구피 새끼들이 물풀들 사에 숨으면 어미 구피들은 속아나는 것이지요. 구피 새끼들이 참 불쌍해요. 구피 어미들은 왜 새끼들을 먹어버리는 걸까요? 할머니께서는 구피 어미가 새끼를 배면 나날이 잘 보고 있다가 새끼를 까면 얼른 뜰채로 건져서 따로 키우신대요. 어미의 입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자라나면 함께 키운대요.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타고난 팔자대로 다 살지 못한단다.”라고 하셔요. 할머니 덕분에 세 마리였던 구피네 가족이 많이 불어났어요. 참 번거롭지요.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이제는 참 재미가 난다고 하셔요. 나는 가만가만히 일어나 툇마루로 나왔어요.
담장너머에 있는 텃밭에서 일을 하시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보여요. 외할아버지는 참 고마우신 분이셔요. 저와 제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무를 심어주셨어요. 나의 나무와 동생의 나무예요. 외삼촌과 외숙모가 아기를 낳았을 때도 그렇게 나무를 심어주셨어요. 제 나무는 오동나무이고 동생 나무는 매화나무예요. 오동나무는 참 빨리 자라요. 벌써 제 키보다도 훨씬 큰 걸요. 매화나무는 아직 어려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는 나무를 보면서 우리들을 생각하신다고 하셔요. 나무를 보면서 나와 동생을 생각하는 외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이젠 툇마루에 있어도 춥지 않을 만큼 날씨가 풀렸어요. 나는 햇볕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툇마루에 누워 기지개를 켜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요. 파르라니 고운 하늘에는 외할머니의 머리카락처럼 하얀 구름이 솜사탕처럼 살살 피어나고 있어요. 한동안 바라보니 눈이 시렸어요. 눈을 감으니 아지랑이 같은 것이 생겨 아른거려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더미 앞에서 본 것처럼 환하게 비치는 맑은 햇살들이 하늘로 올라가며 저들끼리 놀아나요.
앞산에서 나는 산비둘기의 구구구구 구구구구 하는 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려요. 그런데 산비둘기 소리는 왠지 모르지만 슬픔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들리고 혼자 된 느낌이 들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한 쪽 뺨을 툇마루에 대어보았어요. 살짝 미지근한 느낌이 좋아서 절로 눈이 감겼어요. 눈을 뜨자 개나리가 담벼락에 휘늘어지게 피어난 모습이 들어왔어요. 개나리는 작고 노란 등불들을 피워낸 길쭉한 꽃등 같아요. 파란 대문 옆의 복숭아나무의 꽃눈들은 저들끼리 웅숭그리고 있어요. 지난달에 왔을 때는 아주 작은 꽃눈만 겨울을 나고 있었거든요.
나는 봄이 되면 모든 것들이 풀려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나도 풀려난 느낌이에요. 나도 몰래 웃음이 나왔어요. 그런 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4-2. ‘사랑하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지금쯤 동생은 새근새근 자고 있을 걸요. 제가 살금살금 방문을 닫은 까닭은 동생이 깨어날까 봐서이죠. 앗! 동생이 울음소리가 났어요. 동생은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들기 힘든가 봐요. 나는 가지 않아도 돼요. 어머니가 곁에 있으니까요. 동생은 참 좋겠지요. 동생이 자라나면 개나리꽃을 엮어서 팔찌를 만들어 줄 거예요. 나는 동생을 사랑하니까요.
그런데 꽃은 아픈 것을 알까요? 내가 개나리꽃으로 팔찌를 만들려면 꽃을 따야 하잖아요. 얼마나 아플까요. 아! 떨어진 꽃잎을 모으면 되겠어요. 동생 것만 만들 거니까 아주 조금만 있으면 돼요. 나는 이곳에 있는 나무들을 다 사랑해요.
나는 문득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었어요. 마침 어머니께서 방문을 살며시 닫으면서 내게로 오셔서 내 등을 쓰다듬어 주셨어요. 어쩌면 어머니께서는 내 마음을 훤히 알고 계신 듯 했어요. 동생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요.
“엄마,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았어요. 어머니께서는 나를 일으키시더니 내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가셨어요. 그러고는 컵에 물을 따르고 간장을 한 방울 떨어뜨렸어요. 나는 어리둥절하였지만 간장이 물속에 퍼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어요.
“물에 간장을 떨어뜨리면 연기처럼 퍼지면서 간장이 사라지고 간장물이 되 지. 종이에 불을 붙이면 종이는 사라지고 환한 빛과 따뜻한 열을 내지. 이 것을 물에 사른다, 불에 사른다 라고 말한단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르는 것처럼 자신을 살라서 남을 살 수 있도록 도와서 함께 하는 것이란다. 동 생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돌봐주어야 살 수 있지. 동생이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나야 우리 가족도 행복해 지는 것 이지. 이제 사랑한다는 말의 뜻을 알겠니?”
나는 어머니를 와락 껴안았어요. 엄마도 나를 꼬옥 껴안아 주셨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해 주시는 말씀 가운데 “사랑해!”라는 말이 으뜸으로 듣기 좋잖아요. 그런데 우리 학교의 인사말도 ‘사랑합니다.’예요. 살리고 살고 사랑하며 살라는 말들이 입에 착착 붙어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 있으니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듣기 좋지 않을 수 있겠어요.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사랑이라는 말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나는 늘 사랑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살라서 그 사람을 살도록 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나는 아직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더 좋아요. 언젠가는 나도 다른 것들을 사랑할 때가 오겠지요. 가만! 아! 나도 사랑하고 있어요. 나는 동생도 사랑하고 나무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선생님, 친구들 참 많은 것을 사랑하고 있어요. 내가 남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모두 사랑일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학교 인사말인 ‘사랑합니다’라는 말뜻을 풀어주셨어요.
“‘축구하자.’라고 하면 나와 다른 친구들이 축구를 하자는 것이지요. 나는 빠지고 친구들만 축구를 할 때나 나만 축구를 할 때는 ‘축구하자.’라고 말 하지 않지요. 그런 것처럼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말을 하는 것은 나만 사 랑해 주세요나 나만 빼고 사랑해주세요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와 친구들 모두 함께 사랑하자라는 말이에요.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살도록 도와서 함께 누리는 것을 말해요. 남을 살도록 돕는 마음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도 있고 죽으려는 사람도 살릴 수 있고 죽을 맛인 사람에게 살맛을 느 끼게 해 줄 수 있는 으뜸으로 좋은 마음이랍니다. 그 마음을 서로에게 베 풀어서 모두가 함께 살맛을 느끼면서 살아가길 바랍니다.”
나는 갑자기 노랫말이 생각났어요. 이것은 유치원에서도 배웠고 학교에 다다르면 늘 듣게 되는 듣기 좋은 노랫말이에요.
사랑해요 그 한 마디 참 좋은 말
우리 식구 자고나면 주고받는 말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엄마아빠 일터 갈 때 주고받는 말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신이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일맛나지요
이 말이 좋아서 온종일 가슴이 콩탁콩닥 뛴대요.
사랑해요 이 한마디 참 좋은 말
나는 나는 이 한마디가 정말 좋아요.
사랑해요. (저작권 확인)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요. 어머니께서 힘들어할 때 알아채거나 언제 힘들어하시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힘듦을 알아주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을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동생은 말썽꾸러기예요. 어머니의 얼굴빛을 알아채고 얼른 잠들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바쁘다는 것을 알아주고 놀고 난 장난감을 치웠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마음이 슬프다는 것을 알아주고 때를 덜 썼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기뻐하시게 양치질을 혼자서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런 것들을 하기에는 동생이 너무 어리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이 모든 것을 제 힘으로 척척 잘 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생과 사이좋게 놀아주기도 하고 모르는 척 동생에게 속아나기도 해요. 나는 엄마 일도 도와 드리고, 학교에 가져갈 과제물도 준비물도 혼자서 다 챙겨요. 이게 바로 나를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사랑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일이에요. 사랑하는 일이지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는 주기만 하고도 행복하다고 그러잖아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이 맞나 봐요. 그렇지만 주기만 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아요. 아마도 참된 사랑은 받지 않고 주기만 해도 행복할지 모르겠어요.
이참에 동생 별명을 알려줄까요. ‘꾸기’예요. 왜냐고요? 걱정꾸러기, 눈치꾸러기, 능청꾸러기, 떼꾸러기, 말썽꾸러기, 변덕꾸러기, 심술꾸러기, 엄살꾸러기, 욕심꾸러기, 응석꾸러기, 익살꾸러기, 잠꾸러기, 장난꾸러기예요. 어머니께서는 딸인 나를 키울 때와는 너무나 다른 점이 많다고 하셔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꾸러기예요. 꾸러기는 너무 기니까 꾸기라고 불러요. 동생은 잘했을 때는 “푸른솔이 그랬어요.”라고 말하고 잘못했을 때는 “꾸기가 그랬어요.”라고 말해서 모두를 웃게 만들어요. 그리고 내가 제 맘에 들 때는 “푸른솔이가 누나 좋아.”라고 말하고, 내가 제 맘에 들지 않을 때는 “꾸기는 누나 싫어.”라고 말해요. 동생은 뭐든 다 제가 잣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