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이루는 길 (11)

4-3./ 4-4.

by 산바람

4-3. 나와 남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걸까요

우리말이 참 재미있어요. 나는 ‘나다’ 이고 나는 ‘남’이에요. ‘나다’를 줄이면 ‘남’이 되잖아요. 예컨대 생겨나다는 생겨남, 일어나다는 일어남, 피어나다는 ‘피어남’처럼요. 그러니까 ‘나다’는 ‘남’이 된다고 한 것이에요. 그러고 보니 나는 ‘난 것’이고 ‘남 것’이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지, 나와 남은 왜 서로 다르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졌어요. 나는 아버지께 내가 생각한 것을 말씀 드리자, 참으로 좋은 물음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나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예컨대 연필 12자루가 있을 때, 5자루씩 묶는다면 어떻게 되겠니?”

“그야 두 묶음을 하고 2자루가 남지요.”

나는 나눗셈을 배웠기 때문에 쉽게 대답을 하였어요.

“그래. 이 때 남은 연필도 묶음으로 묶인 연필과 똑같은 연필이니?”

“예. 그렇죠.”

“나와 나머지가 같은 것이라면 어떤 것으로 묶인 것과 묶이지 않은 것은 바탕이 같은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처음에 12자루의 연필은 모두 서로 낱이었으니까 5자루씩 묶은 다음에는 묶은 것만을 생각하기 쉽단다. 묶이 지 못한 2자루의 연필은 나머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연필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지. 연필로서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단다.”

“맞아요. 어찌 보면 자리를 내 준건데 처음부터 쪽이 아니었던 것처럼 대 하면 슬플 거예요. 난 남겨진 연필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아빠, ‘나머지’는 알겠는데 ‘남’은 뭐예요?”

“아차,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나’는 자라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임자란다. 그런 ‘나’를 뺀 나머지 가운데 ‘나’와 마주하고 있는 임 자를 ‘남’이라고 하지. ‘남’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나’인 셈이지.”

“그러니까 나와 남은 같은 거라는 거지요? ‘나’ 쪽에서 보면 ‘남’이지만, ‘남’ 쪽에서 보면 ‘나’가 되는 거예요. ‘나’이면서 ‘남’이에요. 참 재미나요.”

“그래. ‘부산에서는 내가 남이가?’ 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너는 나다.’ 또 는 ‘나는 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또 엄마나 아빠처럼 부부가 살다가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는 말이 있단다. 서로가 남 이 되어 나와 마주할 일이 없다는 뜻이겠지.”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 전에는 나는 나머지는 그냥 나머지라고만 생각했어요. 한 번도 나머지가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족, 우리 친구, 우리 교실, 우리 학교, 우리 마을, 우리나라처럼 우리로 묶여 있지 않은 쪽에 대해서는 알아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아버지께서는 ‘나쁘다’는 말의 뜻을 알려 주셨어요.

“묶여 있는 쪽끼리만 알아주고 나머지 쪽들에 대해서 알아주지 않으면 나 쁜 사람이 된단다. 나쁘다는 말은 저만 아는 저의 밖이 없는 오직 나뿐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야. 나쁜 사람은 남이야 어찌 되든 자신의 욕심만 채우 려는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지. 그 마음을 헤아 린다면 차마 그렇게 모질게 하지 않을 거야.”

내 친구도 나머지를 나쁜 것으로 대하는 것을 봤어요. 예컨대 옆 반 친구가 우리 반을 기웃거리면 발로 차면서 쫒아내는 것을 봤거든요. 심지어 모둠활동을 할 때 다른 모둠 친구가 기웃거리거나 지나가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는 듯 눈을 흘기면서 팔로 가리는 것을 봤어요.

나머지, 남,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잖아요. 나쁜 사람치고 남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맞는 같아요. 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요.


4-4.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아요.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에서 나오는 산신령님이 나타나서 나의 바람을 말하라고 한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아니라 다섯 가지라고 해야겠어요. 그것도 너무 많은 것 가운데 줄이고 줄인 거예요. 으흠! 내 소원을 말해 볼게요.

하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갈비찜은 매일 먹게 해 주세요.

둘: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입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셋: 아파트가 아닌 넓은 마당이 있는 이층집에서 살게 해 주세요.

넷: 한 달에 한 번씩 가족 모두 캠핑이나 여행을 가게 해 주세요.

다섯: 아! 벌써 마지막이네요. 공부가 잘 되게 해 주세요.

그러고 보니 더 중요한 것을 말하지 못하였어요.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산신령님께 다시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나의 바람 다섯 가지를 모두 고쳤어요. 고친 바람은 비밀이에요.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먹고 싶은 것은? 입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것은? 잘 생각해 두었다가 별이 보이는 곳에 갔을 때 잊지 말고 바람을 빌어보세요. 바람을 이루려면 별똥별에게 빌어야 한 대요. 별똥별은 너무나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바람을 짧게 해야 한 대요. 예컨대 하나: 모두가 몸이 튼튼하고 행복해 지길 바랍니다. 둘: 가족 나들이를 많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따위처럼 숫자에 바람 한 가지씩 미리 이어두었다가 별똥별을 보면 속으로 빨리 ‘하나.’라고 말하는 거예요. 나는 다섯까지 만들어 두었어요. 여러분도 만들어 보세요. 어쩌면 일, 이, 삼처럼 숫자로 하는 것이 더 빠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하나, 둘, 셋이 더 마음에 들어요.

하긴 이런 것들이 절로 이루어지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그것을 위해 애쓸 것이고 그러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겠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잖아요.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냥 아무 것이나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특별히 어떤 것을 먹고 싶다는 것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먹고 싶은 것만 하더라도 사람마다 달라요. 왜 이렇게 다른 걸까요?

그런데 고양이들도 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예컨대 ‘앞집에 사는 친절한 누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또는 ‘동네에서 으뜸으로 멋진 고양이가 되고 싶다.’ 라던가 하는 것 말예요. 말도 안 된다고요. 나도 알아요. 그렇다면 왜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이 그렇게 많을까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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