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이루는 길 (14)

5./ 5-1./ 5-2.

by 산바람

5. 철이 든 나

5-1. 나는 끊임없이 나는 것이에요

요즘은 장마라서 비가 자주 내려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데다 끈적거리고 몹시 답답하고 짜증이 나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팔짱을 끼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내리는 비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나요. ‘비는 자연이 내는 것이지만 낳아주는 어떤 것이 없이 절로 생겨나는 거겠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예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친구들은 나답지 않다고 해요. 그러나 나는 늘 나이지요. 그러는 내가 나다운 것이 아닌가요? 친구들이 바라는 나다운 것은 어떤 것일까요? 나다운지 아닌지 누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나는 나에게서 나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나는 늘 생각이 나요. 가만히 있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뭔가 끊임없이 생각이 나요. 친구들과 모둠활동을 할 때는 애써서 생각을 하고 생각을 쥐어짜요. 더 나은 생각을 하려고 끙끙대요.

나는 줄넘기를 하고나면 온 몸에서 땀이 나요. 추운 겨울이라도 줄넘기를 하면 추위 따윈 저 멀리 달아나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찜질방에 가셔서 땀을 내고나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하셔요. 내게 찜질방은 너무나 뜨겁고 답답해서 견디기 힘든 곳이에요.

지난 일요일에 아버지와 공원에서 뛰다가 넘어져 팔꿈치에서 피가 났어요. 아팠지만 눈물을 참아냈어요. 작년인가 한밤중에 체했을 때 엄마는 바늘로 내 손을 따서 피를 냈어요. 나는 무서워서 저절로 눈물이 났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을 사고 아버지께서는 돈을 냈어요.

그러고 보니 나는 것과 내는 것이 비슷한데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나요? 나는 것은 나도 모르게 절로 무엇인가 되는 것이고, 내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뜻을 가졌을 때 무엇인가 되게 하는 것이에요. 아플 때는 눈물이 절로 나고, 꾀병을 부릴 때는 눈물을 일부러 내잖아요.

이렇게 재미나다니! 집에 가서 이런 것들에 대해 더 찾아보아야겠어요. 그리고 그것에 어울리는 겪은 일들을 엮어서 문장놀이를 하고 싶었어요. 여러분도 함께 해 보세요.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겪은 일과 엮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세요. 이야기를 다듬어서 문장으로 써 보세요.)



5-2. ‘나다’와 ‘내다’의 그물을 떠 보았어요

요즈음 어머니께서는 하얗고 까슬까슬한 실과 코바늘로 뜨개질을 하고 있어요. 이리 저리 코를 걸면 예쁜 모양이 만들어지고 숭숭 난 구멍도 예쁜 무늬가 돼요. 둥근 상에 깔면 더운 여름에 시원해 보일 거예요. 어머니께서 하시는 뜨개질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어요. 우리가 쓰는 말도 그물처럼 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말예요. 그물을 뜨면 구멍이 생겨요. 나는 그 구멍에 낱말들을 채우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그물을 뜨는 것이 아니라 그물 구멍마다 낱말을 메우는 것이지요. 멋진 말 같기는 한데 이게 무슨 말인지 나도 제대로 풀어내질 못하겠어요.

며칠 동안 계속 ‘나다’, ‘내다’에 대한 낱말을 찾았어요. 가족에게 물어보고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고, 사전도 찾아보고 했어요. 그런데 그 낱말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낱말들을 어떻게 정리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선생님께 도움을 받기로 하였어요. 선생님께서는 “이 많은 것들을 혼자서 다 찾았니?”라며 깜짝 놀라셨어요. 그리고 깊이 캐묻는 힘이 굳세다고 내 신바람을 북돋아주셨지요. 선생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표로 나타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선생님께서는 가끔씩 복잡한 내용을 표로 나타내는 방법을 쓰시는데 자를 대고 줄을 그어서 표를 그릴 때는 조금 귀찮았지만 깔끔하게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사전에서처럼 한글 자음 차례대로 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나는 속으로 공책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컴퓨터를 쓰면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컴퓨터로 하다보면 자판 연습도 될 것 같아요. 난 타자가 빠른 편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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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표와 씨름을 하며 표를 다 만들었어요. 나는 너무나 기뻐서 어머니께 보여드렸어요. 어머니께서도 깜짝 놀라시면서 “이런 숙제를 다 내다니! 너희 선생님은 참 별나시구나. 네게 큰 도움이 되었겠네.” 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살짝 속이 상했지만 “이거 제 스스로 생각한 거예요. 표는 선생님께서 귀띔을 해 주셨어요.” 라고 말씀 드렸어요. 어머니께서는 눈을 크게 뜨시더니 나를 끌어안고 숨도 못 쉴 만큼 꽉 안아 주셨어요. 물론 뽀뽀도 받아서 기분이 날아갈 듯 했어요. 어머니께서는 ‘나다’와 ‘내다’가 어떻게 다른지 글로도 써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나다’와 ‘내다’의 다름을 살펴보았어요. 나는 것은 어떤 것이 나고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에요. 어떤 것이 나고 있는 것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내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태어나는 것은 태어낼 수 없고 자라나는 것은 자라낼 수 없잖아요. 이렇게 오로지 절로 나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 있어요. 깨어나다, 놀아나다, 달아나다, 덧나다, 돋아나다, 불어나다, 살아나다, 생겨나다, 속아나다, 솟아나다, 일어나다, 자라나다, 죽어나다, 타고나다, 태어나다, 풀려나다, 피어나다 따위의 말은 오로지 절로 하는 것을 드러낸 말이에요. 이런 말들은 모든 것들이 난 것임을 말해주는 듯해요. 깨어남, 놀아남, 달아남, 덧남, 돋아남, 불어남, 살아남, 생겨남, 속아남, 솟아남, 일어남, 자라남, 죽어남, 타고남, 태어남, 풀려남, 피어남처럼 난 것은 남이 되어요. 해, 구름, 바람, 흙, 식물, 동물, 사람 그리고 사람이 만든 온갖 물건들과 일들이 모두 남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 세상은 끊임없이 나고 있고 남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남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세상에 난 것은 남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예전에도 이와 같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젠 또렷이 알겠어요. 나도 나와 마주한 남도 모두 난 것으로 남이에요. 그러니까 내 쪽에서 보면 남이지만 남 쪽에서 보면 내가 남이에요. 오직 나만 나이지 않아요. 나도 남이 되는 것이지요. 남은 오직 남이지 않아요. 남도 나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신날 수가 있을까요? 말이 지닌 비밀을 밝혀낸 것 같아요.


내는 것은 어떤 것이 어떤 것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에요. 어떤 것이 드러나는 까닭이기도 해요. 내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한 가지는 절로 내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뜻으로 내는 것이에요. 절로 내는 것은 ‘하늘이 만물을 낸다.’라는 말에서처럼 어떤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것이 드러나도록 하는 거예요. 자연은 모든 것이 나도록 하지만 어떤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길을 가다가 비를 맞았다면 그것은 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 비가 어떤 뜻을 가지고 나에게 비를 맞게 한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비를 맞은 까닭은 비가 그냥 내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람은 뜻으로써 모든 것을 낼 수 있어요. 생각도 내고 땀도 내고 나타내고 살아내고, 만들어내고 비를 피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돋아나고, 생겨나고, 솟아나고, 일어나고, 자라나고, 태어나고, 피어나는 것을 나의 뜻으로 그렇게 낼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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